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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부재의 존재학, 박제성의 지우기 작업

김홍탁

좋아하진 않지만 골프를 치러 몇 번 필드에 나간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와 그 날의 경기를 가만히 복기해 보면 웃음이 픽 터져 나올 때가 있다. 그 조그만 구멍에 공 하나 넣겠다고 온갖 신중한 자세를 취해가며 꼭두새벽부터 채를 휘두르는 모습이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일과 놀이가 분리되지 않았던 옛 시절엔 일이 곧 놀이였지만 일과 놀이가 철저히 분리된 이 시대엔 놀이도 배우고 익혀야 할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열광해 마지않는 놀이에 노예가 되어 버리는 현상도 발생한다. 사실 열광이란 단어는 이미 그 안에 허망함이란 단어를 품고 있다. 하늘엔 땅이 들어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일 골프를 치는 상황에서 골프공이 없다고 가정해본다면 미친 짓처럼 채를 휘두르며 환호하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움을 넘어 허망해 보일 것이다. 박제성 작가는 바로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 <공(空)>은 가장 치열한 운동종목 중 하나인 축구경기에서 공을 지워 없앤 작업이다. 대상 없이 이리저리 뛰고 점프하고 부딪쳐 넘어지는 모습들은 허망해 보인다. 그의 부재에 대한 해석은 존재치 않음으로 인한 불편함 또는 존재치 않은 대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일반화되어 있던 것을 넘어 허망함이란 새로운 정서를 불러낸다.



<그의 침묵(His Silence)> 연작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세 사람 오바마(정치인), 달라이 라마(종교인), 슬라보예 지젝(사상가)을 등장시킨 이 영상작업은 그러나 이 달변가들의 말(speak)을 지워 버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의미 모를 음성(sound)만 이어 붙임으로써 아무런 생각도 전달하지 못하는 위인들의 허망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두 작품은 우리에게 너무나 낯익은 풍경을 낯설게 비틂으로써 당연시해왔던 사실의 한 꺼풀 뒤에 가려진 허망하고 우스꽝스런 현실을 환기시킨다. 그의 이런 장기는 광고회사 아트디렉터로 일한 경험에서 길러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물을 지워 존재를 없애는 작업은 광고회사에선 일상화 된 일이다. 그는 상업적 커뮤니케이션의 상상력을 그의 작업에 도입해 명쾌하고 알기 쉬운 형이상학으로 풀어냈다.


축구경기에서의 공의 부재와 말이 무기인 사람들의 말의 부재는 본질의 부재를 의미한다. 우리는 그 본질의 존재만을 늘 생각해 왔지 그것의 부재를 생각해 본 적은 좀처럼 없다. 그러나 부재 역시 존재하는 것의 본질이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먹고 즐기며 생활을 영위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부재를 향한 몸부림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압축해 보면, 결국 죽기 위해 사는 것 아니던가. 허망하다. 아! 이 지독한 존재의 아이러니……



김홍탁(1961- ) 현재 제일기획 제작본부 마스터. 삼성전자 글로벌 프로젝트와 국내 애니콜 캠페인 주도. 뉴욕페스티벌, 런던광고제, IBA 등 국제 광고제 다수 수상. 현재 국제광고제 심사위원 역임. 저서 『광고, 대중문화의 제1원소』,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 『크리에이티브 게릴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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