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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서울대 미대 조형연구소 국제학술대회

허보윤

“세계 속의 한국 현대미술 : 상황의 검증” 국제 학술 심포지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는 지난 10월 20일에 '세계 속의 한국 현대미술 : 상황의 검증'이라는 제목의 국제 학술 행사를 개최하였다. 세계 미술계와 미술시장에서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한국 현대 미술의 상황을 점검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마련된 이 행사는 금호예술기금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6개국 7명의 강연자가 참여하여 발표하였다. 발표내용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한국 현대미술을 다각도에서 조망한 김정희(한국), 이정희(미국), 진휘연(한국)의 발표를 하나로 묶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한국미술을 대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준비된 라이 잉잉(타이완), 메리 그리피스(영국), 정신영(일본), 아구스틴 페레스-루비오(스페인)의 강연을 해외 비교 사례로 범주화할 수 있다. 


“해외 미술전 속의 한국미술의 얼굴”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한 김정희씨는 1950년대에 시작된 해외 한국미술전들을 역사적으로 추적하고 그 특성을 분석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해외에 소개된 한국 현대미술은, 동양의 재료와 서양의 기법을 융합한 그림들로 출발하여, ‘물질과 정신’ 혹은 ‘물질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기댄 채, ‘정신’과 ‘자연’ 혹은 ‘과거’를 대변하는 작품들로 이어졌다. 또한 1990년대 이전에는 해외전의 창구가 좁았기 때문에 그 기회를 권력으로 삼은 일부 미술계 인사들에 의해 한국 현대미술이 ‘모노크롬’과 같은 단선적 이미지로 전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국제전에 접근하는 통로가 훨씬 다양해짐으로써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대미술에 대한 평가가 세계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 해외전과 국제전의 권력적 우월성이 계속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포틀랜드대학 교수인 이정희씨는 미국에서 경험한 한국 현대 미술의 실상을 잘 전달해 주었다. 최근의 한국 현대미술이 생각보다 현지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점과 특히 판매에 있어서 매우 부진하다는 사실을 꼬집고, 그 이유를 분석했으며 또 그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작가 개개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켜야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며, 모두가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하게‘바깥’의 사회와 접속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진휘연씨는 한국미술과, 한국미술을 ‘주변’으로 위치시키는 ‘중심’인 서양미술 사이의 관계를 호미 바바의 이론을 근거로 분석했다. ‘주변’ 즉 로컬로 인지되는 한국미술은 중심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며, 중심에 대한 정치적 저항으로서 중심이 제공하는 원본을 거꾸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는 그의 논의는, 일면 서구의 추종으로 구성된 한국의 근대성에 탈식민주의적 주체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질의자 김형관씨가 물었듯이, 이미 구성된 중심/주변 구조와 무관하게 혹은 그것을 초월한‘주변의 중심화’가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만큼 한국미술에 주체적‘차이’가 존재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새롭게 제기된다. 


한국미술을 파악하기 위한 비교사례로서 타이완과 일본 그리고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았는데, 우선 라이 잉잉이 타이페이에서 개최되는 국제 비엔날레와 베니스 비엔날레의 타이페이 전시관을 통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혹은 ‘주변’으로서 참여하고 있는 국제비엔날레의 의미와 문제점들을 짚어주었다. 일본에서 독립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정신영씨는 모더니즘이라는 거대담론 붕괴 이후 각광받고 있는 일본 현대미술의 특징과 짙은 상업적 성향에 대해 논하며 일본 포스트모던 미술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메리 그리피스씨는 자신이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맨체스터 대학의 휘트워스 미술관이 어떻게 전통적인 컬렉션 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롭고 현대적인 컬렉션 체제를 도입했는지에 관해 설명했고, 이를 통해 현대미술이 ‘중심’에서는 어떤 식으로 새롭게 조망되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 발표자, 아구스틴 페레스-루비오씨는 일본에서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서양이 동양을 이해/번역하는 일에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불분명함을 거론했으며, 그가 책임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카스티야이레온 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퓨전’이라는 전시를 위해 선별된 작품들을 보여줌으로써, 서양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방식의 재고를 촉구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발표가 끝난 후의 종합토론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패널들은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이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법(?)에 관해 솔직하게 발언하기도 했고, 그러한 상업적인 접근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며 예술가 본연의 자세(?)를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나는 사실상, 이번 학술심포지엄의 내용을 정리하고 전달할만한 입장에 있지 않다. 준비과정 후반에 투입되어 진행을 마무리했을 뿐, 심포지엄의 기획과 발표자 선정에 힘을 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발하게 대형 국제 전시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즈음, “세계 속의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과 의미를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 공감한다. 그리고 심포지엄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에 충분히 호응했는지에 대해 답을 구하고 있다.



허보윤(1967- ) 영국 포츠머스대학 박사. 현 국제학술심포지엄 코디네이터, 서울대 미대 조형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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