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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014 광주비엔날레와 ‘스펙트럼-스펙트럼’전에 참여한 작가 홍영인

김달진



플라토의 ‘스펙트럼-스펙트럼’ 전시에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반대 촛불 집회 장면을 표현한 <불길의 사랑>과 광주비엔날레에 1974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출판된 북한의 퍼레이드 이미지를 확대시킨 <침묵하는 북>을 자수를 통해 보여준 홍영인 씨를 만났다.

Q. 영국 런던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게 된 계기와 최근 그곳에서 활동은?
A. 런던에서 공부를 마친 후 줄곧 여기에 살고 있다. 작년에  스웨덴 스톡홀름의 시실리아힐스트롬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있었고, 유럽에서 그룹전이 있었다. 최근에 런던의 델피나파운데이션과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를 올해 말- 내년 초에 완성 예정에 있다.

Q. 과거 우체국, 경찰서 등의 공공기관에 설치미술을 함으로써 그곳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공공미술을 보여주었는데 현재도 그 과정 중인가요?

A. 2004년에 삼청동 파출소와 안국우체국에 설치했던 작업들은 당시에 갤러리나 미술관의 미술 시스템을 떠나 스스로 장소를 선택하고 내 전시를 스스로 기획하고자 했던 시도로, 이 작업들은 이후 내 작업하는 방식이나 패턴에 지속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주어왔다. 나는 특히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개입에 의해 변화되거나 혹은 생성되는 장소성에 지속적으로 관심이 있어왔다. 과거에 비해 최근 작업들에 와서 더욱 매체를 선택할 때 주저함이 없어졌는데 이를테면 꼭 그 장소에 작품이 놓여지는 것보다는 그와 유사한 혹은 그보다 더 정확한 ‘경험’을 일으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Burning Love (2014)는 그런 점에서, 우리의 감각을 건드리는 이미지의 정치성과 장소성을 동시에 다루고 있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 감정적으로 자극된 군중에 의해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시점을 포착하여 고정시키려 노력하였다.


Q. 작업 소재에 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유는?
A. 그동안 바느질로 설치물을 만들거나 이미지 작업을 해 왔는데, 바느질은 내게 (기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조각적인 제작 방식이고 아시아의 수공 산업과 예술제작방식을 병치시킴으로써 개인적인 언어를 개발하는 일이다. 자수로 이미지를 제작한 후 실을 정리하지 않고 남겨두는 이유는 자수의 공예적인 특성을 그와 상이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과정중심적인 특징을 더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Q. 설치, 자수회화, 퍼포먼스 등 작업 스타일과 내용 면에서 변화한 과정이 궁금하다.
A. 내 관심은 미술대 학생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동일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매체나 표현 방식을 택할 때 더 주저함이 없어졌기 때문에 표현함에 있어 더 거침이 없어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에 음악을 했었기 때문에 음악, 무용인들과 협업하는 퍼포먼스가 내 피부처럼 편하게 느껴진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야 다루기 시작한 매체이지만 상당히 좋아한다. 자수작업은 오랫동안 해왔으나, 아마도 기술상의 특징 때문에 그것이 진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으므로 전시되거나 노출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종종 전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편이다. 과정 중에서는 그런 작업들이 영구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라고 진화되면 다양한 작품들로 커가고 결국 보여지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작가로서의 연륜 때문에 이러한 작업과정의 결과물들이 과거보다 더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Q.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자수라는 방식을 통해 보여주며 기록하는데 이러한 작업 방식은?

A. 2000년경 부터 작은 가정용 재봉틀로 집에서 그림 그리기를 혼자 시도했었다. 그러가다 인도 델리에서 레지던시 하던 2004년에 거리의 바느질사로부터 공업용 자수기계를 다루는 법을 처음 배웠다. 재봉 기계로 하는 자수는 컴퓨터 자수에 비해 느리고, 힘든 노동을 요하지만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 나아가 값싼 기술이기 때문에 한국의 의류 산업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듯 하다. 따라서 폐물이 되어가는 기계를 구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 먼저 중요했다. 2006년부터 동대문에서 자수하는 분께 다시 바느질을 배웠고 지금은 내 기계를 가지고 자유자재로 자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바느질 기법 자체가 내가 한국에서 자라고 살아온 시기의 근대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고, 그것을 통해 내가 살아온 혹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특정 시공간을 찾고 붙들고 혹은 재해석하는 일이 독백적이면서 동시에 고발적인 일이 되는 것 같다. 


Q. 이번 광주비엔날레와 ‘스펙트럼-스펙트럼’의 퍼포먼스는 직접 출연하지 않고 다른 익명의 다수를 통한 연출인데?
A. 비교적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이 작업들에서 집단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작업이 가능한지 실험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집단이 모이는 것에 대한 제지나 두려움이 보수적인 사회에서 더 두드러지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모이는 집단 자체가 일종의 저항을 암시하기도 하고, 그것이 나아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가졌다. 이를테면 플라토에서 소개된 < 우리가 춤추게 하라>(2014)에서는 스트리트 댄스를 배우는 십대 소녀들이 일주일에 한번 미술관으로 와서 춤을 추도록 유도하고 미술관과 아티스트인 저와 협업자는 시공간을 제공하면서 매주 퍼포먼스가 진행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소녀들의 완벽하지는 않지만 발랄한 춤이 우연적으로 발생시키는 부분들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건드려주기를 기대해보았다. 
광주비엔날레에서 소개된  <5100:오각형>' (2014)에서는 불특정 참여자를 유도하고, 참여자가 있을 때만 퍼포먼스가 가능하도록 하여 더욱 작품의 지속성을 위태롭게 설정하였다. 이런 익명의 다수에 의한 퍼포먼스의 셋팅은 작품의 존재성을 위태롭게 하지만, 그것이 반복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면 매번 다른 참여자들에 의해 매번 유일하게 다른 작업이 가능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Q. 영국에서 본 한국 현대미술 변화는?

A. 제가 런던으로 다시 이동한 2006년부터를 돌이켜보면 그동안 신자유주의 경제구조로의 변화가 전세계 미술이 보여지고 소비되고 또 행해지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비교적 규모가 크지 않았던 한국의 미술계에서는 그 변화가 더 구체적인 양상들로 드러났었던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현대미술이 지역적으로 어떻게 변했는가 보다는 동서의 구분을 떠나 신자유주의와 현대미술이 관계하는 방식을 찾아보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전시를 통해 동시대 동료 작가들의 작업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지켜보는 것이 늘 흥미롭다. 왜냐면 자본의, 혹은 그와 관련한 다양한 힘의 역학안에서 미술은 변해왔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작가들, 혹은 작품들이 그 거대 구조안에서 미술을 정의하고 자신을 정의하기 위해 대처하는 제스처같이 보인다.

미술이 글로벌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하고 성장하고 또 억세게 가지를 쳐야 하는 시대에 과거에 비해 한국의 미술이 다양화, 세분화 될 수 밖에 없고, 그와 함께 인식있는 전문인층 역시 더 두텁게 성장해가고 있다고 믿는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진행하고 있는 작업들이 있는데, 집중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가을, 겨울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내년의 전시일정들이 작업의 속도를 거스르지 않도록 잘 조절하려고 한다.


- 홍영인(1972- ) 서울대 조소과 및 런던 골드스미스대 파인아트학과 석사 및 박사 졸업, 2003 석남미술상, 2011 제22회 김세중청년조각상 수상. 2014 델피나파운데이션 레지던시. 현재 런던을 베이스로 유럽과 서울에서 활동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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