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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전 한국미술연감 이재운 발행인

김달진


한국 미술계는 그동안 미술가, 전시회, 전시공간, 관람객, 미술시장 등 상당한 양적인 확장을 보여왔다. 이 성장과 함께 그 만큼 정보와 자료의 양이 증가하고 있다. 이 다양하고 대량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자료를 소멸시키지 않고 활용하고 효과적으로 정리 보존하여 후대에 남기는 일은 중요성에 비해 모두들 너무도 무관심하다. 미술활동의 주체가 되는 미술가를 찾아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인명록 출판물도 드물다.


한 해 동안 미술계에 일어난 일들을 분류 정리한 한국미술연감은 우리가 미술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시절 “기록은 하나의 엄연한 역사입니다” 라는 창간사로 1977년 발간되었다. ‘한국미술신문’ 발행을 목적사업으로 정한 뒤, 그 자료수집 과정으로 미술계의 연간 기록물인 『한국미술연감』과 미술사를 다룬 『세계미술대사전』, 용어편과 인명편인 『미술사전』 등을 펴내고 97년까지 미술연감 10권을 발행하였던 이재운 사장을 만났다. 이 사장과 나와의 인연은 내가 30대 시절 필자로 연감발행에 부분적으로 자료정리를 제공하면서 맺어졌다. 이 사장은 그동안 서대문시절, 중구 정동시절 24년을 걸쳐 종로구 낙원동 4년을 지나면서 살림이 궁핍해져서 밀리면서 지금 살고 있는 고양시 벽제동으로 떠났고 10여년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미술계에서 차츰차츰 잊혀지게 된 것이다. 요즈음 미술계 젊은 미술인들은 이 사장은 잘 모르겠지만 이 나라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한창 앞만 보고 달리던 70년대 중반부터 우리 미술계의 기초자료를 정리했던 사람이다. 나는 빛바랜 『한국미술연감사 10개년사업 추진계획서 (1977-1986)』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중적인 횡적 출판과는 달라서 미술전문 분야의 종적출판은 시장성이 좁기 때문에 이윤추구의 경영상식에 미치지 못했다. 경제환란으로 몸살을 앓던 때인 1997년 판을 끝으로 『한국미술연감』은 절판되고 40여권의 방대한 미술자료를 펴낸 이 사장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끝내 꿈을 접고 좌절하고 말았다. 결국 ‘Korea Showcase’와 ‘아호대사전 및 미술연감(양화 명감편)’은 중도에 그쳐야 했으며 참여작가에 대한 갚지 못할 빚으로 남게 되어서 마음을 어둡게 한다고 했다. 


이재운(李載運, 1940- )씨는 퇴계 이황의 진성이씨 총본산인 대종가의 둘째아들로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생활을 하다 미술출판에 투신했다. 일을 하기위하여 그가 없앤 막대한 재산과 오늘의 생활고를 미술계에서는 피안의 불 보듯 외면하고 잊고 있어 아쉽기만 하다. 훈장은커녕 그 흔한 표창장이나 감사패 하나 받지 못했지만 그가 해왔던 일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지금 ‘한한사전(韓漢辭典)’ 집필과 안동문화권 반촌(泮村) 언어를 정리하고 있다.



이재운(1940- ) 미술출판, 안동사범학교 졸. 『세계미술대사전』(1992), 『미술사전』(1989), 『한국미술연감』 13권(1977-1997) 등 40여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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