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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전북도립미술관에 미술자료 기증한 윤범모 교수

김달진

내가 만난 미술인 (46)

미술평론가 이경성, 이구열 선생에 이어 한국근대미술 연구에 매진 해오며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창립에 앞장섰던 미술평론가 경원대 윤범모 교수가 지난 해 연말 전북도립미술관에 6,500여점의 미술도서와 자료, 그리고 김진우의 <묵죽화>(1930년대) 등 40여점을 기증했다. 지난 2009년 필자가 서울대 한국근현대 미술/디자인과 자료 세미나 발표를 앞두고 전국 국공립미술관 자료실 실태조사로 전북도립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장서는 도서 3,064권, 연속간행물 559권, 자료수집 예산이 800여만이었다. 자료실은 비공개였으며 너무 빈약했다. 자료를 기증한 윤교수를 만났다.


Q. 자료 발굴에도 힘써 <한국현대미술100년>도 펴내고 누구보다 자료의 소중함을 알고 있어 기증 결단이 쉽지 않았을텐데 동기와 전북도립미술관을 선택한게 궁금합니다?


A.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곧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것과 동의어임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 자신만을 위해 허겁지겁 살아온듯한 과거를 반성하게도 되었다. 이제 뭔가 비우는 연습이 절실해졌다. 때문에 평생 내가 가장 아끼면서 가장 집착을 보인 부분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책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 책은 나에게 있어 분신이었지만, 달리 표현하면 애물단지 혹은 십자가였다. 끌고 다니자니 힘이 들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다. 지난 20-30년간 나의 소원은 바로 나의 장서를 한자리에 모두 꼽아 보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커다란 공간이 필요한데, 나에게는 그럴만한 공간이 없었다. 고민 끝에 허름한 공장 창고를 임대해 몇 군데로 나누어 보관하던 책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상자를 풀어 종류별로 분류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버리는 연습, 이것을 실천하고자 지지난 해 나는 카메라를 버렸다. 카메라 역시 나에게는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사진집도 출판했고 사진 개인전까지 개최해 본 나의 입장에서 카메라 버리기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맨 손으로 해보니 그것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해 드디어 나는 나의 분신인 장서를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책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이를 실험해 보고 싶었다. 하여 전국에서 미술자료 부분이 낙후한 곳을 생각하고 있다가, 마침 전북도립미술관에 자문회의에 참석했다가, 건물은 그럴듯한데 자료실이 없는 것을 보고 결심을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을 선택했다하여 주변 사람들은 놀라더라.



Q.기증한 자료의 내용은?

A. 기본은 한국미술사 관련 도서들이 주종이다. 고미술에서부터 근현대미술 관련 자료들이다. 단행본 위주이지만 미술잡지, 1950년대부터 국전도록 원본 전질을 비롯한 각종 도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유학생활 중이거나 해외여행 중에 구입한 영문판, 중문판, 일어판 등 각종 외국도서도 상당량에 이른다. 멕시코 여행 중 구입하여 십자가처럼 끌고 다닌 대형 호화양장본 멕시코 벽화 화집도 포함되어 있다. 일제말 친일미술의 원전 자료라 할 수 있는 『성전미술』과 같은 도록도 포함되어 있다. 미술분야 이외 문학, 역사학, 불교학 등 다양한 편인데, 그 가운데는 국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자료들도 있을 것이다.


Q. 이구열씨가 삼성미술관 리움에 자료를 기증해 한국미술기록보존소가 설립되어 한국미술아카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에 이용길씨가 부산시립미술관에 자료를 기증하였고 광주에는 고여송씨가 광주시립미술관에 자료를 기증했습니다. 현단계 한국의 미술아카이브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한국의 미술 아카이브는 초보수준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이 작품 수집에는 열의를 다하면서도 도서와 영상자료 등 기초자료 수집과 연구에는 소홀히하고 있지 않은가. 미술관은 작품 전시실만 아니라 도서자료실도 활발하게 운영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A. 학생시절 나 또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졌었다. 미술사라는 학문에 입문하고 고미술 공부에 집중했다. 우현 고유섭선생 학맥의 일원이 되었고, 한국미술사라는 학문으로 미술사학에 입문한 것은 다행이기도 했다. 나의 연구실에 우현선생의 육필원고를 보관한 캐비넷이 있었다. 이 육필원고를 살펴보면서 나는 미술사라는 공부의 맛을 알게된 것 같다. 하지만 미술기자 생활을 하면서 고미술보다 우리 근대기의 미술자료 집성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제시대의 신문 잡지를 본격적으로 탐독하는 한편 원로작가와 유족들을 찾아 다니면서 구술사의 기초를 마련했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우리 근대미술사학을 주전공으로 뜻을 세운 사람이 없을 때여서 외롭고도 힘 든 일이었다. 하지만 기초 자료의 집대성은 무엇보다 시급했다. 멸실되는 관련 자료들을 하나 둘씩 모으면서 우리 근대미술사 관련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그같은 열매의 하나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를 결성할 수도 있었다.
근대기 작가를 연구하면서 김복진과 같은 위대한 선각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라면 커다란 행운이다. 지난 해 『김복진연구』라는 두툼한 저서를 출판한 바,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 어떻게 한 작가를 가지고 이렇게 두툼한 책을 집필할 수 있느냐고. 김복진이 후학에게 던져준 담론은 매우 크고도 넓다. 그는 강조했다. 사람은 역사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Q. 앞으로 계획은?

A. 지난 30년간 나는 근대기 작가 연구 논문 40편가량을 발표한 바, 이 논고의 출판이 숙제로 남아 있다. 상업성과 거리가 있으면서, 방대한 분량이어서 언제 독지가를 만나 출판할 수 있을런지 장담할 수는 없다. 학술서 이외 대중을 위한 저술작업에도 집중하려한다. 다만 현재 전국 단위로 미술관 자문 등 회의 참가 요구가 너무 많아 집필작업에 집중할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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