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22)미술관에서 만난 잊지 못할 그림들

박종기

글이 있는 그림(122)
박종기 / 한국화가


베니스 구겐하임미술관은 수준 높은 근대회화 소장품 덕에 일 년 내내 관람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출입문을 들어서자 앞 벽면 중앙에 동양스타일의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캔버스에 부드럽게 풀어헤친 율동감 넘치는 검은 선들은 마치 화선지에 먹물로 그린 동양 그림을 보는 듯 했다. 더하여 여기저기 흩어진 붉은 색 점은 어느 이른 봄날 핀 품격 높은 매화 고목을 연상케 했다. 그림을 그린 화가가 궁금하여 가까이 가보니 뜻밖에도 잭슨 폴락이었다. 동양의 수묵 문인화적 화법을 서양시각으로 구사한 폴락의 캔버스가 경이롭게 다가온다. 관습을 따라 누적된 구태를 재정비하고, 외형적 전통을 따르던 지난날에서 탈출한 내 안의 나를 재무장하느라 전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작년 겨울에 열린 그랑팔레 모네특별전에는 루앙성당 연작을 비롯한 빛과 공기의 기운이 가득한 명작들이 전시되었다. 오랑주리미술관에도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그린 연꽃그림 연작이 상설 전시중인데, 마치 동양의 명상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이 대작들을 보는 관람객들은 초면임에도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행복에 젖어 떠날 줄을 몰랐다. 모네의 창작열은 말년에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됐다. 눈이 보이지 않는 힘든 상황에서도 캔버스의 경계를 손으로 만져가며 마음속에 남아있는 잔상을 캔버스에 그렸다. 내면의 의식이 반복된 선묘를 따라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여 뒷날 미술사가들은 그를 현대 추상회화를 탄생시킨 선구자로 평하기도 한다.

동양적이거나 일본적인 표현방법이 서방에 영감을 주어 새로운 화풍을 형성하게 된 사실은 이미 서양의 평론가들이 상당부분 밝혀놓았으니 여기서 다시 재론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 미술형식에 잠재되어 있는 내밀한 우리만의 표현형식들을 잘 해석하고 확대하여 현대적 미의식 창출에 일조하기를 기원한다.


- 박종기(1947-) 경희대학원 졸업. Maharaja Sayaji rao university. 개인전 9회. 현대미술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FIGURATION CRITIQUE(파리 그랑팔레), 한국·중국 문화교류전(북경 예술박물관), 신생대수묵화전(자유중국 웅사미술관), 청추전(동경도미술관). 호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해군사관학교박물관. 경희대도서관. 한양대박물관. 한미사진미술관, 기당미술관 작품소장.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