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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23년 전 여름, 피아노 조각에 대한 기억

윤영석

글이 있는 그림(126)
윤영석 / 가천대 교수


그의 어두운 방, 1990, 10mm 철판, 알곤, 전기 용접, 190×160×130cm


1990년 여름, 서울예고에서 입시 소묘와 소조를 가르치는 강사로 생활하던 나는, 선택한 전공의 현실에 대한 회의와 지루한 강사생활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조각적인 해체와 재구성 작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고3  입시소조 시간, 비너스 등의 석고상을 조금 닮지 않게 만든 학생들에게 조금 더 닮게 보이도록 고쳐주는 일을 하고 나서 학교 뒤뜰에 앉아 쉬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한 기운과 답답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들리던 피아노의 선율, 가슴을 적시듯 흘러나오던 피아노 소리. ‘무슨 곡인데 이렇듯 가슴을 파고드나?’ 나는 소리를 따라 걸었다. 건물 5층 음악 레슨실 앞에 왔을 때 피아노곡의 일부를 연습시키는 중인지 일정 부분이 반복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연주곡의 일부라기보다는 피아노라는 악기에 대한 훈련처럼 느껴졌다. 열려있던 그 레슨실 문 앞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비너스 모각을 가르치다 올라온 나로서는 매우 미묘한 감정이 발생되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레슨 교사가 나가면서 문이 더 열려 레슨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마른 체구의 한 남학생이 흰 와이셔츠를 입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등받이 의자와 피아노 위에 떨어지던 조명과 함께 아까 그 아름답던 선율과는 매우 다른, 아주 상반된 느낌의 어떤 아우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시금 소조 레슨실로 돌아와 학생들에게 비너스의 형태를 수선해 주듯 고쳐 주는 일을 반복 하면서 그 방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를 다시 들었다. 조금 전 들었던 곡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다르게 들리는 걸까 생각하면서, 어디가 틀렸는지 잘 판단하기도 어렵게 만들어 놓은 수험생들의 점토 비너스를 계속 고쳐 주면서….

그 해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 레슨실에서 느꼈던  감정, 그 아우라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120×240×1cm 짜리 철판 한 장을 조금도 버리지도, 더하지도 않고 자르고 용접해서 검은 청보라빛의 피아노 조각, ‘그의 어두운 방’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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