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39)유령의 회화

정재호

경야 經夜 Wake, 2014, 한지에 채색, 194×130cm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라는 소설이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지 못했다. 아니 못 읽을 것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20세기에 쓰인 작품 가운데 완독하기가 가장 어려운 문학작품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경야(經夜)라는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제목으로 달고 있다. ‘경야’는 죽은 이를 장사지내기 위해 밤을 새우는 일을 말한다. 지난 6월에 있었던 개인전의 막바지에 작품들의 제목을 지으면서 문득 이 소설의 제목이 떠올랐다.


‘경야’라는 제목의 그림은 안국동에 있는 한 오래된 건물을 그린 것이다. 낡았기도 하거니와 전혀 관리한 흔적도 그럴 의지도 없어 보이는 건물이다. 마치 유령이 나올 것 같다. 특이한 것은 3층까지의 건축양식과 4층, 5층이 다른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중에 한 지인으로부터 이 건물의 기이한 양식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5.16 이후 대통령에서 물러난 윤보선의 집을 감시하기 위해 기존의 건물을 증축하여 올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죽은 이를 장사지 내기 위해 경야하듯이 정치적으로 죽은 이를 감시하기 위해 이 건물을 올리고 경야한 셈이다. 도시의 오래된 건축물들은 이렇듯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죽은 자의 일이 말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역사가 될 것이나 그럴 수 없다면 그건 전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설이 된 이야기는 역사가 된 이야기 보다 강력하게 살아남아서 현재를 떠돈다.


나는 주로 밤을 새워서 그림을 그린다. 이번 그림들은 6, 70년대를 다룬 것들인데 그렇다면 나는 그 시대를 작업실에 불러놓고 경야했던 셈이다. 회화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회화의 태도는 그래서 과거라는 죽음의 상태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이기도 하다. 어떤 회화는 죽은 것을 영원히 과거의 것으로 봉인하는가하면 어떤 회화는 죽은 것을 끊임없이 현재로 불러내기도 한다. 그건 유령의 회화이다


- 정재호(1971- ) 서울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석사. 2014년 갤러리현대 개인전 ‘먼지의 날들’ 외 7회의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작품소장. 현 세종대 회화과 교수.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