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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그림 그린다는 일

주태석

그림은 ‘체질’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 체질을 찾고 그 체 질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기보다는 주위에 너무 민감해 버려 쉽사리 ‘자기 찾기’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좋을 때가 많다.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없다. 남에게 답할 때 정중히 ‘예’하는 것과 조심성이 없이 ‘응’하는 것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마찬가지로 선과 악에 있어서도 과연 그 차이가 얼마나 되나”라는 노자의 말처럼 우리는 본질을 외면하고 너무나 형식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이다.

그림에 있어서 주제는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회화적으로 소화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의식 밖에 있는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하여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자연’의 모습과 이를 포착해서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은 자연을 아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갖게 한다. 묘사를 하면 할수록 멀어지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아득해지는 자연의 실체이다. 자연의 한 단면 묘사가 아닌 자연의 느낌을 포괄적인 이미지로 형상화 시키려는 내 노력은 결국 아주 부자연스러운 요식 행위를 강요한다.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자연의 모습을 순간적인 찰나를 포착하여 그냥 스쳐가듯 자연스러운 형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 눈앞에서 보는 자연보다는 관념적인 자연의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을 그리려고 이미 보았던 그림들을 모두 잊어버리려고 애썼다는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마냥, 그간 듣고 보고 배워서 알고 있는 그림에 관한 얄팍한 지식이 새삼스럽게 짐이 되기도 한다. 단순히 거울처럼 전사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연이라는 그 자체와 직면하는 적극적인 교감과 그 자연을 보는 독자적인 시각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나타내고자 하는 나의 표현은 극히 부자연스럽다. 자연은 결코 인위적인 재주부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인 것이다.

- 1989년 12월에 쓴 작업노트다.




자연·이미지, 2015. Acrylic on Canvas, 60×160cm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벌써 40년이다. 30대 중반에 쓴 작업에 대한 내용들이 지금의 작품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나의 작업이 발전해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인 것인가?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난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나태하고 나약한 작가인가?


대학 4학년 때부터 그려왔던 <기찻길> 연작에 이어 80년대 후반부터 오늘까지 계속해서 <자연·이미지> 연작을 해오고 있다.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닌 주변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소재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야 할까 하는 고민하는 것이 붓을 들고서부터 오늘까지 이어온 숙제이기도 하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으로 세상을 보라’고 했던 모네의 말처럼 언제나 새롭게 열린 눈으로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새롭게 보는 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개인전 횟수가 40회를 훌쩍 넘기면서도 한 번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오픈 날을 넘긴 적이 없다. 나 자신이 발가벗고 전시 벽면에 걸려 있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전시를 해오고 있는 나의 무모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그 무엇이 두려운 강박감에 눌리면서도 캔버스에 매달려야 한다고 나를 몰아세우는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개인전의 부담감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거의 매일 밤을 꼬박 새워 캔버스를 채웠다가 그 다음날 아침엔 다시 덮어 버리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오늘 또 붓을 들고 있다


- 주태석(1954- )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회화과 졸업. 프랑스, 일본, 중국, 서울 등에서 개인전 43회.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회,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 대학미술협의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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