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의 과거, 요리책, ‘Unlearning’ 전시 중에서, 갤러리이즈, 2016년 9월
어릴 적부터 싫은 것이 너무 많았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싫은 것이 많아 괴로워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엄마가 물어보셨다. “너는 세계 평화를 기원 하면서 왜 그렇게 싫은 것이 많으니?” 그래서 좋은 것이 많은 사람으로 변화하고자, 열심히 좋은 것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좋은 것이 많아지자 그것에 또 집착하게 되어 좋은 것이 사라지거나 변하는 순간 다시 또 괴로워졌다.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 결국 내게 괴로움을 주는 것은 집착이었다.
싫음과 좋음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축적된 경험으로 입력된 고정관념, 즉 일방적인 관점으로 보는 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싫던 것도 좋아지고, 좋던 것도 싫어지기에, 싫지도 좋지도 않은, 마음이 여유로운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매 순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 중이다. 고정된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이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의 연속이라 정해진 모양도 없고, 정해진 이름도 없다.
머물러 있는 순간이 한순간도 없으므로 ‘이마리 ing’ 이라고 지금 막 개명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평화롭고 여유로운 마음의 상태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 이 작업이 시작되었다. 남녀노소, 특히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쉽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Unlearning’ 이란 제목은 지금까지 배워 왔던 지식을 되돌려봄으로써, 미리 입력된 정보 없이 모든 것을 보면 좀 더 마음이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무엇을 아는 순간 우리는 그 알아버린 지식을 통해 판단하여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머릿속 깊숙이 박힌 왜곡된 개념 없이, 이 순간 있는 그대로 거울에 비추듯이 일상을 새롭게 경험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우리의 생각이 고정되어 고착화되어 있는 데서 문제점을 찾았기 때문에 유연성이 있고 아무 곳에서나 구하기 쉬운 노란 고무줄밴드를 사용해서 작업하고 싶었다.
<Rubber Band Tribe(고무줄 종족)>이란 작업은 누구나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노란 고무줄밴드를 손목에 차고 전시를 관람하기 시작한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도 서로가 고무줄을 손목에 찬 것을 보는 순간 동질감을 느낀다. 같은 ‘고무줄 종족’ 이기에 ‘우리’라고 하는 개념이 형성된다. 예를 들어 같은 고향 사람이 아닌데도 같은 고향 사람으로 착각하여 생각하는 순간 사실이 아닌데도 그 사람과 친밀감과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이치와도 같다.
이 작업은 모든 것이 생각에서 오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동질감을 부여한 것이다. 많은 분쟁의 원인인 ‘국가’라고 하는 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기에 나 또한 인위적으로 ‘고무줄 종족’이라고 하는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서로를 ‘우리’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류를 하나로 묶어 버렸다. 전시를 다 관람하고 나갈 때는 각자 손목에 찾던 고무줄밴드를 여러 개의 못이 박혀 있는 판넬에 꽂아 두고 나감으로써, 전시 관람객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작업으로 마무리된다.
<똥의 과거>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싫어하고, 더럽다고 생각되는 대표적인 것을 생각해 보니 똥이 있었다. 똥은 처음부터 똥이 아니고, 우리가 먹는 음식의 결과물이다. 말하자면 음식은 똥의 과거이다. 모든 아름다운 요리책들의 제목으로 <똥의 과거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더럽다고 여긴 똥도 몇 시간 전에는 깨끗이 씻어 놓은 요리 재료였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침 컵에 뱉고, 도로 마시기> 작업은 관람객들이 일회용 가글 컵을 뽑아서 본인의 침을 뱉었다 다시 마셔 보며 직접 경험해 보는 작업이다. 우리가 입속에 있는 침은 잘 삼키다가도, 침을 뱉었다가 다시 마시려니 느닷없이 더럽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침은 변한 게 없는데 자신이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이 작업은 늘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스스로 경험해보고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업이다. 나와 너와 우리와 국가와 세계와 우주와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옳고 그름에 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