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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나는 바란다.

이순종


이순종, 백만대군(180306-180421) 전시전경, 씨알콜렉티브, 서울, 2018




좌) 이순종, 전리품(트로피), 2018, 합성수지 위 침, 120×120cm, 디테일컷
우) 이순종, 전리품(노획물), 2018, 가변설치, 300×150×200cm, 디테일컷


작업, 그만둘까?
수 없이 나에게 묻는다.
내가 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인가?

1989년 돌아와 지금까지 작업을 펼쳐 보이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나는 아내이고 어머니이고 주부이고 곧 할머니가 될 것이다. 나의 일상 역할이 분산된 것만큼이나 나의 작업 또한 갈래가 많다. 평면, 입체, 오브제 영상 등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소위 말하는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인가 아니면 중심이 없는 활동인가.

작업할 때 나는 목표나 계획이 없는 편이고 개념이나 전략을 세우지 않는다. 그냥 떠오르는 것들을 꺼내 씀으로 나의 작업은 사적인 경향이 많다. 말하자면 내 안의 무엇을 낭비하는 일이며 안 하면 고인 물처럼 썩을까 두렵다. 나에게 작업은 살다가 부딪히는 일들의 해석이고 세상을 향한 통로이고 그 통로를 통해 나를 낭비한다. 그렇게 나를 순환시킨다.

작가 활동이 전문화, 전략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그냥 내 것을 꺼내어 펼쳐 보이는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익한가... ‘그냥’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다 포함할 수 있다. 만일 신이 태초에 빅뱅을 일으켜 세계를 열었다면 아마도 그냥 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그래서 세계는 모순과 역설로 경험되고 때로 신비와 경이로움을 맛보인다.
 
A.I. 로봇이 상용화되어 다방면의 활동을 할 것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예술 작업, 활동도 예외는 아니며, 인간보다 더 전문적이고 전략적일 것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프로그램된 A.I.가 목적 없이 일할까? 뚜렷한 목적 없이도 그냥 내 안의 것을 꺼내 써버리는 일, 작업, 활동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거룩한 낭비’라 부르고 싶다.

미래 세상에서도 예술 활동은 계속될 것인가?
왜, 누구를 위해 하는가?
예술 활동이 작가의 명예와 부 나아가 권력까지도 취할 수 있는 방편으로만 쓰인다면 A.I.를 구입해 일을 시키면 되고 종국에는 A.I.가 진화하여 스스로 프로그램된 최적의 작가 활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신비함, 엉뚱한 호기심과 예측불허의 오류가 사라진 완벽하지만 닫혀있는 세계, 나는 그것을 죽음이라 생각한다. 

나는 바란다.
사람이, 인간이, 인류가 예술 활동을 잃지 않기를...그래서 신비롭고 경이로운 이 세계를 감각하는 일을 놓치지 않기를...감각하고 반응하는 일-그것이 작업이고 작가의 활동이다.
나의 삶이 마감될 때 일이 있어 좋았다고 고백하게 되길 바라본다.


이순종(1953- ) 서울 출생. 홍익미술대학 조소과 졸업(1976). 노스텍사스주립대 미술대학원 석사. 1988년 귀국 후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참여. 고려 불화와 민화를 사랑하고 한국 작가로는 겸재 정선과 외국작가로는 70세부터 생을 마감한 100세까지 활발히 작업한 루이스 부르주아를 좋아함. 다석 유영모 선생을 존경하고 씨알 사상을 지지함. 「이순종 작가론」(홍익대 미술대학원 석사 논문 우혜진 저) 나옴(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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