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88)팔꿈치와 책상

김도희


만인융릉, 2019, 한국의 흙, 설치, 820×820cm : ‘판타스틱시티:셩’(2019,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1. “살면서 매끈한 서사로 처리되지 않은 경험들은 감각의 조각이 되어 몸의 여기저기에 웅크려 점차 밀도를 가진다. 아마 그것이야말로 사실에 접촉했던 강력한 증거이다. 서로 다른 밀도를 가진 쪼가리들은 자석처럼 서로 당겼다 떨어지며 몸속에 기묘한 인상과 이미지와 감촉과 온도의 물질감을 피워 올린다. 내 오른손이 반대편 왼손을 잡듯 그 물질감에 사로잡힐 때 나는 이 무엇인가를 궁금해하며 시간을 보낸다. 비로소 나는 매끈하게 팽창된 자아의 외피가 아니라 나의 경계, 내 몸이 놓인 방식을 본다. 그리고 이 무엇인가의 실감을 어떻게 발화해야 할 것인지 자연궁리한다.”
2018.12.20



살갗 아래의 해변, 2017, 연마기로 갈아낸 갤러리 벽, 설치과정, 800×240×800cm : 개인전 ‘혀뿌리’(2017, 진갤러리)

2. 몸의 표면, 그리고 뇌가 통합하는 신경망만 무시하면 안구와 발가락보다 책상에 닿은 팔꿈치와 책상이 더 닮았다. 팔꿈치와 닿은 책상이 없다면 나는 무슨 근거로 존재한다고 말할까.‘겹쳐 있다.’ 는 것은 사물을 의인화하는 것과 다르다. 대상성 속에, 그리고 대상이 내 몸의 감각망(혹은 존재망) 속에서 겹쳐진 상태가 관능적으로 실감 날 때의 놀라움은 흔히 말하듯 감각의 확장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도 불충분하다. 감각이 인간으로부터만 일방적으로 뻗어 나가는 촉수처럼 느껴져 촘촘한 상호성을 감추는 인상이기 때문이다.


야뇨증, 2014, 장지에 어린아이의 오줌, 설치, 800×300cm : ‘젊은모색 201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 나는 사물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서로의 구석구석을 사물과 내가 통각을 자극할 정도로 탐닉하고 훑어나가는 것에 이르러서야 성에 차는 편이다. 대상은 원래의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나를 기억하고 내 몸에 그 감촉과 존재감을 남긴다. 그런 연후에야 최소한 ‘호명’의 권리를 허락받는 기분이다. ‘윤리의식’ 같은 민망한 습성에서 아직 놓이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었던 몸뚱이를 두들겨 풀어내고 온기로 찜질을 하여 한결 유연하고 가벼운 몸으로 바꾸듯 내 몸은 이미 더 자유로운 미래를 향하는 중이다. 순간순간 내 존재의 물질감을 더 충실히 발화하며 내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깨닫고 즐기고 싶다.
너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의 경이로움, 살아 있는 상황에 문득문득 충만할 때의 강력한 힘을 믿는다. 나는 이제 상대를 단편적으로 설정하여 그것에 ‘반(反)’할 필요도. 나를 그것에 대조하여 강조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설정은 결국 나를 상대적 의미에, 상대적 감정에, 상대적 우월성 속에서 얻는 자아 속에 가두는 짓임을 안다.


김도희(1979- ) 홍익대 회화과 학사, 동대학원 석사 졸업. 개인전 5회. 2012 아르코 미디어아카이브 프로젝트, 2014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19쓰시마아트 판타지아 전시 참여.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성북문화재단 외 지원선정.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 작품소장.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