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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서울에 풀려나다, 오동나무

이소요

좌) 이소요, 〈서울에 풀려나다, 오동나무–성북구 동소문로 42나길〉, 2021, 디지털 사진, 가변크기
중) 이소요, 〈서울에 풀려나다, 오동나무–서대문구 신촌로〉, 2021, 디저털 사진, 가변크기
우) 이소요, 〈서울에 풀려나다, 오동나무〉, 2021, 작업 과정


〈서울에 풀려나다〉는 필자의 고향인 서울에 서식하는 생물을 관찰하여 만드는 다큐멘터리 연작으로, 2018년에 시작하여 지속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들은 인간이 도시 환경에서 자원으로 길들였으나 풀려나서(feralized) 나름의 생태를 만들어가는 생물이다. 지금까지 세 종류의 생물을 다루었는데, 생울타리로 길들였으나 건축물과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형태와 삶을 가지게 된 ‘회양목(Buxus microphylla var. koreana)’, 도시녹지 조성을 위해 제주에서 도입한 억새에 딸려온 후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지열로 생존하는 기생식물 ‘야고(Aeginetia indica)’, 그리고 과거에 마당이던 자리가 재건축을 거쳐 사라지면서 집을 떠나 콘크리트와 시멘트 틈에서 잡초처럼 퍼지는 오동나무(Paulownia tomentosa (Thunb.) Steud.)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서울에 풀려나다, 오동나무〉는 종로구 구도심 일대, 동대문구 이문3구역 재건축부지, 성북구 상월곡동 집창촌 주변을 비롯하여 19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 조성된 주택가의 흔적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지역에는 마당이나 공터에 심어서 기르던 오동나무가 자생력을 지니면서 번식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오동나무는 감나무, 향나무 등 다른 조경수에 비해 번식과 생장이 왕성하여 벽돌이나 시멘트의 갈라진 틈, 혹은 건물을 철거한 공터처럼 사람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곳에 쉽게 정착하여 살아간다. 기둥을 통째로 베어도 이듬해 다시 줄기를 내고, 여름이 되면 맹아지에서 거대한 잎이 돋아나 눈에도 무척 잘 띈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동나무는 목재, 약재 등 자원으로 이용했으나 지금은 심어 기르는 사람이 많지 않으며 기능의 측면에서는 현대 도시인이 삶에 적합하지 않은 생물이 된 듯하다. 대신 나름의 방식으로 급변하는 서울 도시 환경에서 생존하며 문화적, 지리적 지표가 되어준다. 이들은 숲으로 퍼지거나, 도시 바깥에서 자생하던 개체들과 교류하면서 인공 대 자연의 구분을 허물고, 야생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인류학자 애나 칭(Anna Lowenhaupt Tsing)은 2015년 저서 『세상 끝의 버섯: 자본주의 폐허 속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The Mushroom at the End of the World: On the Possibility of Life in Capitalist Ruins)』에서 인간의 감각, 관점, 그리고 기성 지식을 통해 인식하지 못하던 규모(scale)를 지니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알아채기의 기술(the art of noticing)”이라고 표현하였다(p.37-38).

필자는 〈서울에 풀려나다〉 연작을 통해 인간중심(anthropocentric)의 시각 환경을 넘어 행위자들의 다양한 삶과 그 배치(assemblage)를 알아채고, 또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관찰의 대상을 식물이 아닌 다른 생물군과 공생체들로 확장하고자 한다.


- 이소요(1976- )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 렌슬리어 공학대학 예술학 박사. 싱가포르 NTUCCA 레지던시 프로그램(2018),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4기, 창동레지던시 19기, ‘진주 잠수부’(2021, 경기도미술관), ‘생태감각’(2019, 백남준아트센터) 외 다수의 기획전 참여, ‘식물도감: 시적 증거와 플로라’(2016,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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