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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1=∞

신유라

올해 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전시(5.19-6.18)를 통해 나는 참 특별한 경험을 선물 받았다. 허름하고 작은 지하 공간. 좁은 층계를 따라 내려온 사람들이 짙은 갈색 빗살무늬의 대문 사이로 형형색색 나오는 빛을 보며 감탄한다. 안으로 들어오니 마치 오아시스 같다고, 어떤 사람은 노아의 방주 같은 느낌이 든단다. 밀림 속 같다, 좋은 냄새가 난다, 마음이 편안하다, 계속 있고 싶다, 쉼이 된다, 그렇게 제각기 다 다른 작품이 한데 어우러졌다. 크고 작고 조금은 희귀한 식물들이 정원처럼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드리운 위로 수많은 크리스탈 곤충으로 만들어진 조명 작품이 신비한 빛으로 변하며, 작은 바람에 흔들린다. 소파 앞 작은 테이블에는 전시장 내 관람객의 움직임과 전시장 외부의 행인이나 차의 움직임을 실시간 열화상 이미지로 변화되어 전시의 현재성을 표현했다.



신유라, 6+1=∞전시 전경, 2021, 작가 제공.


한 커플이 ‘어? 내가 서 있는 아이보리 카펫이 하늘에 떠 있네요.’ 한다. 전시장 바닥은 하늘이다. 아침, 낮, 저녁 빛이 각기 다른 하늘이 3차원 4차원 공간을 만들어 낸다. 쏴아~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보기만 해도 온몸이 시원해지는 파도가 앉아 있는 이에게 밀려온다. 맑고 힘찬 바닷물과 부서져 내리는 파도, 서핑하는 사람들, 낚시를 즐기는 젊은이들, 빈 그네의 삐걱거림, 멀리 퍼지는 수평선의 노을, 물에 젖은 바닷모래가 전시공간에 있는 모래와 이어져 마치 지금 바다 모래사장에 앉아 있는 듯하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스텔라의 작품을 콜라주한 작품을 보던 70대 관객은 저 부드러운 아이보리선으로 수년간 아파해온 커다란 마음의 상처에 새살이 돋는 것 같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모래가 흩어진 작은 계단을 눈으로 따라가면 엔틱 화장대 위 타원형 거울 속에서도 파도가 끝없이 들이친다. 여행하는 커다란 배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잠수함 같아요 한다. 바닥이 하늘이 되고 천장에서 내려온 크리스탈 잠자리는 조명과 전시공간의 움직임을 따라 영롱한 무지갯빛으로 계속 바뀐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각각의 작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동시에 서로 보완하는 유기적 관계다. 바닥, 천장, 어느 한 곳도 빠짐없이 전시 공간 전체가 한 작품이다.



신유라, movement of object, 2021, 열화상 카메라, 스틸 테이블, detail


15년의 전시, 어떻게 하면 더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까, 한 작업 한 작업에 나를 쏟아붓고 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소진했었다. 17m 거대한 설치작업도 하고, 퍼포먼스도 하며 애썼지만, 전시가 끝나면 허탈함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6+1=∞’ 전시가 더 특별했다. 사람들이 안내 없이도 작품 속으로 들어와 놀고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설명을 해주면 더 재미있어하고 자기 속 이야기까지 꺼내며 작품을 재해석함으로 관객의 느낌과 경험에 따라 작품이 무한대로 전개되었다. 일반 관람객도 작가들도 즐거워했다. 지금까지는 전시 준비를 하며 애를 쓰고 힘을 들였다면, 이번엔 나를 드러내고 내 목소리를 내는 대신 나를 잠잠히 하고 힘을 빼고 또 힘을 빼는 작업을 했다. ‘사람을 살리는 공간’을 선물하고자 공간에 찾아올 사람들을 생각했다. 행인, 젊은 작가, 주부, 직장인, 전문가, 청년, 아이… 누구든 와서 쉼이 되고 회복되어 생기와 온기가 살아나기를 기도했다. 기대 이상으로 전개되는 새로움에 감동하고, 아름다운 빛의 변화와 생동감을 피부로 느끼며 고정된 생각의 틀이 깨져 삶이 유연하고 새롭게 변화되기를 바랐다. 그게 쉼이든, 용서든, 평안이든, 보내줌이든, 자유이든 고착화 된 불안감에서 벗어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더 알고 사랑하고 인생을 풍성하게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란 내게 나를 버릴 때, 비울 때, 다른 사람을 채울 수 있음을 실감 나게 배운 고마운 전시였다. 내 삶에 계속될 전시 여정에 가면 갈수록 깊이와 지혜가 더하여 내가 먼저 즐겁고 세상에도 그 빛을 풍성하게 나누기를 원한다.


신유라, 게르니카 스텔라, 2021, detail



- 신유라(1972- )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미국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 회화과, 홍익대 대학원 섬유미술과 졸업. 국내외 6회 개인전 및 단체전 ‘씨실과 날실로’ 서울시립미술관(2018), ‘9회 트빌리시국제미술제’ 조지아국립미술관(2016), ‘Jump into the unknown’ 베네치아비엔날레 위성전시(2015) 외. 파날361(부에노스아이레스),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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