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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신의 몫인 요변(窯變)을 추구하며

박순관

글이 있는 그림(100)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서 이 길에 들어온 지 어느덧 35년째의 봄을 맞는다. 내가 이 길을 택했기에 한 번도 좌절한적 없었고 지금도 늘 행복감을 느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나의 미소 띤 얼굴이 참으로 편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졌기 때문이라며 부러워한다. 이렇듯 늘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작업을 하면서도 가끔 책이나 TV를 통하여 십 년, 이십 년 한 길을 간 유명인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대하면 내 자신은 여태껏 무엇을 이루었고 어떤 단계에 이르렀는가를 따져보면 자조(自嘲)하게 된다.




나는 도예 입문 20년 전시회 서문에 이렇게 썼었다. 옛말에 흙반죽 10년에, 만들기 10년, 유약과 불때기 10년은 해야 도자기를 안다고 했다. 그러니 나도 10년만 더 하면 좀 알겠구나 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힘차게 일했다. 아마도 계속 가스가마로 불을 땠으면 꿈을 이루었을지 모르나 바로 그 때부터 장작가마를 사용하다 보니 아직까지도 불을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어디 가서 도자기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다른 예술은 자신의 손에서 끝낸 결과물이 어느 정도인지 눈으로 확인되는 것과는 달리 도예는 마지막 완성만큼은 불의 신에 의존해야할 몫이 크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대로 완성되는 일이 적은 편이다. 장작의 불꽃과 재가 한데 어우러져 도자기들 사이를 어떻게 비집고 흐르느냐에 따라 도자기에 새겨지는 색상과 면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불의 흐름을 예상하면서 크고 작은 도자기를 의도대로 배열하고 거꾸로 혹은 옆으로 뉘여 쌓거나 흙덩어리로 받쳐서 소성 후에 자국을 나게끔 가마재임을 한다.

3일간의 밤샘 불때기가 끝나고 또 사흘간의 희열을 참아가며 열이 식기를 기다렸다가 가마 문을 열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내는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물론 그래서 앞으로 더 노력할 가치가 있고 다시금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이 일이 육체적으로 힘이 들어가고 고질적인 허리의 아픔으로 인해 앞으로 남은 일이 겁나기도 한다. 아직도 얼마나 더 해야 마음에 드는 작품이 척척 나올까?

또 다시 희망을 가져보지만 너무도 어려운 길이고 그 길을 이해하며 사랑해 주는 이들이 많지 않으니 아무래도 몸이 예전 같지는 않음만이 서글플 뿐이다
<- 박순관(1955- ) 전통기와, 벽돌 공장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1976년부터 단국대에서 도예전공. 국내외에서 15회의 개인전을 했고, 옹기제작 기법으로 국내외의 전시회와 워크샵에 초청되었다. 대영박물관, 벨지움 마리몽 왕립박물관, 뉴욕 롱하우스 리져브, 브룩클린뮤지엄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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