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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두 번의 봄과 가을 사이

윤정선

계절이 주는 선물, 2023, Acrylic on canvas, 91×65cm

나의 그림은 개인적 경험과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들에 대한 기억을 채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직접 체류하며 머물렀던 장소를 찍었던 사진을 기억을 떠올리는 매개체로 활용하여 작업하는데, 그것은 대부분 소소한 일상의 사건, 개인적인 감상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면이다. 주로 일상에서 만나는 사건과 관련 이미지들을 일기 쓰듯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다가 작업의 소재로 사용한다. 일상은 보통의 순간으로 구성된다. 지나가 버리는 보통의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지 고민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포착한 이미지에 미술의 조형 언어를 사용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덧씌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적으로 발생하였다. 처음 일 년 동안은 모든 것이 멈춘 듯 이전의 자연스럽던 일상이 멈춰버렸다. 두려움과 공포에 멈춰 섰던 일상의 시간은 일 년이 지난 후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잠깐이면 끝날 것 같았던 팬데믹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팬데믹 시기를 보내면서 그동안 사소하여 당연했던, 그래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상의 단편을 떠올리며 여행, 이동, 만남, 내 주변에 있는 자연과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지인들의 소중함, 아픔으로 남았던 기억들조차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변한 것이 없을 텐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지금의 순간이 찬란하게 빛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봄기운, 2023, Acrylic on canvas, 38×38cm


지난 개인전 ‘두 번의 봄과 가을 사이’(5.17-6.3)를 준비하면서 팬데믹 동안 조심스럽게 이동하면서 채집했던 장면들을 선택하였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서 주목하지 못했던 대상을 더 아름답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100년의 세월 동안 서울 도시의 빌딩 사이에 가려진 낮은 근대식 건축물들, 그리고 최초 한옥마을 익선동 골목길의 지붕들, 전라남도 목포 구도심 유달동에 있는 적산가옥들과 근대 건축물들, 제주 오름에서 볼 수 있는 혼자 있는 나무들을 맑은 색감으로 따뜻한 온기를 담아 표현하고자 했다.


화인페이퍼 갤러리 전시 전경


이전의 지붕은 언제나 나의 위에서 하늘을 가리는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나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가 되었다. 사람을 보며 그 빈 자리를 그렸는데 이제는 늘 그 자리에 우직하게 서 있는 나무에 시선이 먼저 간다. 사진 속의 풍경은 그리 변한 것이 없는데 내 안의 풍경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바라보는 대상이 바뀌었고 관심의 대상도 변하고 있다. 인위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눈길이 가면서 대상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드디어 생명을 보기 시작했다. 생명은 어디에든 있다. 사소한 풍경이 생명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화폭에 담기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의 화폭에서 생명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 윤정선(1971- ) 이화여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영국 브라이튼대 순수미술 석사, 중국 칭화대 미술학 박사. 14회의 개인전과 기획 단제전 참여. P.S.Beijing창작스튜디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창작스튜디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참여, 제2회 금호영아티스트, 제24회 석남미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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