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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이 시대 미완의 꽃들이 슬프다

박상희

글이 있는 그림(117)
박상희 / 조각가
 

 

 

만약 내가 조각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갤러리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에게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재능이 있었을까? 건축가? 그러기엔 수학적 재능과 치밀함이 부족하다. 학자는 물론 아니고 사업가적 기질은 더더욱 없다. 조각을 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는 시인이었으면 했다.

 

내가 문재(文才)가 있어서가 아니다. 시는 기차와 비행기 안에서, 또는 걷거나 자다가도 메모를 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시가 될 수 있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시를 쓰는 마음과 조각을 하는 마음은 같다. 일종의 정서적 동종이형(同種異形)인 셈이다. 시는 무게가 없으나 조각은 있다. 그래서 나는 조각은 무게가 있는 시라 하고 싶다. 시인인 친구와 시와 조각에 관해서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신은 좋겠다.”
“왜?”
“시를 쓰는데 필요한 도구는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되니까.”
시는 물질과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장소 이동과 제작비 등에서 구애받지 않는다.
조각은 무게가 있음으로 해서 여타 미술활동과 비교하여 제작에 드는 비용이 가장 많은 편이다. 그래서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작업을 하는 와중에 수시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부모와 자식, 또는 남편으로서의 책임과 현실 사이에서 ‘과연 예술가의 길을 계속 가야만 하는가’하는 끝없는 자문…작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예술가의 길을 이미 포기한 재능있는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 이 시간에도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보내는 이 시대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문화의 꽃이라며 위무하는 주위의 배고픈 격려에 그들의 삶은 너무 버겁다. 지금은 반 고흐와 이중섭의 시대가 아니다. 꽃은 스스로 피지 않는다. 햇빛이 있어야 하고 그만큼의 물도 필요로 한다. 피기도 전에 시드는 이 시대 미완의 꽃들이 슬프다. 하지만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핀다.’며 오늘도 자신을 위로해본다.

 

 

 

- 박상희(1955- ) 서울 생.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 졸업. 서울대 등에서 강의를 했으며 2001-2004년 파리에서 활동하다 귀국. 1993년부터 현재까지 갤러리도스, 아트사이드, 주불 한국문화원, 금호미술관 등 12회의 개인전. 현재 현대공간회 회장, paris 소나무미술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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