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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의 “동아시아 관전”에 대한 단상

김현숙

20세기 초 일본은 공모전 형식의 관전인 문전(文展)을 개최했고, 이어서 식민지 한국, 타이완과 괴뢰국 만주에 관전을 개최했다. 관전이란 기본적으로 중견 미술인들의 권위를 받쳐주면서 아마추어들이 미술계에 입성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국민의 문화적 요구와 취향을 배양육성하면서 미술계를 통합 관리한다. 따라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경향은 배제되고 격조와 조화미에 주력하는 아카데미즘 양식의 온상이 되기 쉽다. 더욱이 식민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식민지의 관전은 미적 보수성 위에 정치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식민기의 관전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매우 불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관전에서 성공한 미술인과 친일 미술인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해버린 상황에서도 일상의 삶은 이어지기 마련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맵시나는 차림을 하고 연애를 하고 음악가나 화가가 되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 화가를 소망하는 자가 있으며, 또 그들 중에는 집안이 가난하여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다가 관전에서 화가로서 입지를 세운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국의 국민 화가 박수근이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조선미전에서 추천작가, 특선작가가된 미술가들 대부분이 일제 말에 친일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제도에 대한 평가에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와다 산조(和田三造)의 조선총독부 벽화 밑그림과 초벌그림이 걸려있는 전시장 전경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전시회의 제목은 ‘도쿄,서울, 타이베이, 창춘 - 관전으로 보는 근대미술(2.13-3.18)’이고 영어로는 ‘Toward the Modernity: Images of Self & Other in East Asian Art Competitions’이다. ‘근대성을 향하여-동아시아 공모전에서의 자기 혹은 타자 이미지’로 번역되는 영어 제목에서는 20세기 전반기 일본 정부가 주관했던 관전에서 일본, 한국, 대만, 만주 미술의 근대성을 찾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데 반해서 도록 표지에 인쇄된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의 전시 제목은 각 나라의 수도를 관전 개최 시기 순으로 병기한 후 ‘관전으로 보는 근대미술’ 이라는 다소 무성격하고 객관적인 제목을 내세웠다. 헌데 우리의 입장에서는 관전과 근대성을 연결시킨 영어 제목도 거슬리지만 도쿄를 선두로 해서 서울-타이베이-창춘으로 이어지는 글자가 파노라마처럼 펼펴지는 일본 제국의 욕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수난과 핍박의 역사는 직접 그 시절을 겪지 않은 후손들에게도 집단 무의식으로 전해지는 성싶다.


결국 이 전시에 대한 평가는 일본과 한국이 평행선을 긋는 것으로 막을 내릴 것인가? 평가는 개인마다 입장마다 다를 것이지만 나는 여기서 전시회를 기획한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후쿠오카는 지리적으로 부산과 매우 가까워 자매도시를 맺었고 한국인 유학생이 많다. 이 미술관에서 근 30년 간 실시해온 아시아트리엔날레를 조금 깊이 들여다 보면 아시아의 다양성을 미래지향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인적 교류를 통한 이해를 추구함으로써 후쿠오카 지역인들의 삶을 풍성하고 관대하게 하는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음이 발견된다. 아시아 붐이 일면서 아시아의 부활을 내세우는 대규모 전시가 수 없이 개최되었지만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에 뭔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성찰에 바탕을 둔 일관된 지향성이 아닐까.


동아시아 관전이 열리는 맞은편 전시장에서는 ‘기록으로서의 예술-근대사를 보는 눈’ 이라는 소장품 기획전(1.30-4.22)이 열리고 있다. 한국 작가 민정기, 조덕현의 작품도 포함된 이 전시는 21세기의 눈으로 아시아의 식민지지배와 전쟁을 다룬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이 소장품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는 태평양 전쟁기에 일본군에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했던 아버지를 소재로 한 어느 동남아시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에서는 이 전시를 소개하는 ‘찌라시’에 동아시아 관전 개최에 맞추어 특별히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대목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의 소장품 기획전에 몇몇 작품이 철수되며 벌어졌던 해프닝이 생각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참고로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은 후쿠오카 시로부터 재정을 지원받는 시립미술관임을 밝힌다.



김현숙(1958- ) 홍익대 미술사 박사. 정관 김복진 미술이론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역임. 현 L.A뮤지엄 Associate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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