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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잊혀진 그림을 찾아서

김한태

문화도시울산포럼 김종수 고문이 벗인 김홍석 화백이 작고하기 전 

건네준 작품 앞에서 오랜 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故 김홍석(1935-1993) 화백과 절친했던 부산사범대 1기 동기생 김종수 고문(79, 문화도시울산포럼고문, 뉴욕 거주)이 김 화백과 관련된 두 개의 의문을 풀려고 애쓰고 있다. 하나는 김홍석 화백이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 1978년 인도트리엔날레(Triennale-India)에서 최고상을 받았던 작품을 기증했는데 그 그림이 아직 인도대사관에 그대로 걸려 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미국 녹스빌대학 교수의 주선으로 워싱턴, 뉴욕, 보스턴에서 초대전을 열고 난 뒤 그 작품들을 반송할 경비가 없어 어느 재미교포에게 맡겼는데 그 작품들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이다.


김 화백은 부산사범대 미술과 출신이고 친구인 김 고문은 음악과 출신이다. 그들은 전공을 넘어 우의를 다졌다. 김 화백은 부산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캔버스에 바느질로 실밥을 켜켜히 뜯고 부풀려서 조형성을 표현하는 독특한 경지를 개척했다. 울산에서 개인사업을 했던 김 고문은 친구인 김 화백이 어려운 살림 속에 작품활동 하는 것을 지켜보며 여러 도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인도트리엔날레 최고상 수상도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항공편 운송비가 없어 선박으로 보내다 보니 심사당일까지 도착시키지 못했다. 마침 심사결과는 최고상을 줄만한 작품이 없었다. 1978년 4회 인도트리엔날레는 최고상 없는 기록을 남길 뻔 했다. 그런데 하루 늦게 도착한 그림 한 점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다시 모였고 그 결과 이의 없이 한국인 작가 김홍석에게 금상을 주게 되었다. 감격에 겨운 김 화백은 그때까지 전무했던 한국작가의 국제미술제 최고상 작품을 주인도한국대사관(당시 대사 이범석)에 기증했다. 기념비적인 그 작품이 지금 대사관에 걸려있다면 작품 사진이라도 보고 싶다는 것이 친구 김 고문의 소망이다. 김 화백은 미국 초대전 후 뉴욕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계획했으나, 생활비 마련을 위한 단순 노동과 그림작업을 병행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 김 화백은 엄청난 정력으로 작업 활동을 하게 된다. 부인과 먼저 사별한 그는 자녀들 걱정 외는 오직 작품에만 매달렸다. 결국은 자기의 건강을 잃고 만다. 1993년 김 화백이 58세로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김 고문은 친구의 아들이 가져온 그림 한 점을 받았다. “아버지가 꼭 전하라며 보내셨다.”는 전언이었다. 그리고 3일 뒤 김 고문은 친구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다.


그로부터 오랫동안 김 고문도 해외에 머물렀다. 최근 귀국한 그는 김 화백의 진가를 파악했던 일화를 이렇게 기억했다.


“저명한 화학회사 듀폰(DuPont)사가 한국에 처음 진출할 때입니다. 한국지사장으로 부임하던 지인이 자신이 애용하던 클래식 음반 200여 장을 부산항을 통해 통관하던 것을 도운 뒤, 그를 데리고 김 화백 화실에 갔죠. 첫 눈에 김 화백의 작업에서 특이한 메시지를 받았다고 호평했어요.”


김 고문은 이런 평가를 한 듀폰 한국지사장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 출신 화학도였다. 듀폰사 장학금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듀폰사에 취업했다. 몇 년 근무 뒤 간부 수업을 받을 때 음악과 그림을 공부했다. 이 두 가지는 세계 공통어이자 대화의 소재가 되므로 새 시장을 개척하는 듀폰사 고급간부는 반드시 익혀야 했다는 것이다. “그 화학자의 식견이 뛰어난 것은 그 뒤에 김 화백에 대한 세평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김 고문은 “외국에 나가 살다 보니 친구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노구에 그와의 추억을 새삼 더듬게 된 것은 이번 추석에 김 화백의 아들을 20년 만에 만났기 때문이다. 덕석(멍석의 방언)을 풀어 작품을 한다기에 지푸라기는 부패되므로 보존이 안될 거라 조언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2006년 7월 부산 구덕문화공원에 작가 김홍석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졌다.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재조명하는 종합적 추모행사도 열렸다. 우리 미술의 세계화 가능성과 국민적 긍지를 높인 미술인으로 유작전과 학술대회도 이어졌다.



김한태(1957- ) 경상대 임학과 졸업. 경향신문 전국부 기자, 울산제일일보 편집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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