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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공동체가 함께 만든 지도

최형욱

우리는 그동안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하여 실제 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기획이나 공적인 지도에서는 익명으로 처리되는 개인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에게 삶 속에서 체득된 공간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들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주민들의 손으로 그린 지도, 아카이브북 등으로 시각화 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우리가 주목하는 지점은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이야기 속에 의외의 순간 불쑥 발견되는 개인들의 기억과 역사의 흐름이 중첩되는 접점이나, 거대한 기획과 상충되는 자기화된 방식의 삶의 태도들이다. 우리는 수치와 도표와 거창한 조감도로 표현되는 도시기획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거대한 지표 아래에서 묵묵히 고민하고 일하고 있는 개개인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다.


<잇!태원 감각의지도>, 2014, Silkscreen on steel, 200 × 200 cm


스트라본(Strabon, BC64?-AD23?)으로부터 기원한 지리학의 전통을 보면 제국의 지배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군사, 지리, 행정을 위해 지도를 제작하고 정치적으로나 심미적으로 유용하지 않는 정보들은 생략하는 방식으로 제작자의 의도나 세계관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지도는 축적이 시작된 순간부터 진실을 전부 담을 수 없고 정보선택을 통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애초에 객관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면, 실제 그 장소를 점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각을 따라 특정 장소를 시각적으로 구조화시키고자 하였다. 


주민들의 자기화된 장소기억

우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많은 지역 거주자들을 만났고 그 장소와 관련된 자기화된 방식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인터뷰를 통해 듣게 된 내용들을 일부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창동은 물이 많고 좋기로 유명했다. 물이 풍부해서 60년대부터 서울의 준공업지대로 개발되었다. 주로 물이 많이 필요한 양조간장, 제지, 벽돌 공장들이 들어섰다. 지금 그 공장터들은 아파트단지로 바뀌었다. 84세의 한 어르신은 창동의 샘표공장에서 근속하셨고 퇴직하셨다. 집에서 공장으로 출근하는 길은 산 넘어가는 길인데 이 길은 지도에도 안 나오는 길이었다.


 - 어떤 주민은 창동스튜디오에 있다가 떠난 외국작가의 작품에 직접 개입하신다. 창동스튜디오 옆의 열쇠집사장님은 외국인 작가가 우이천변에 토끼 조각을 만들어 놓고 갔는데 사람들이 기분 나쁘다고 발로 차고 훼손하곤 했다고 한다. 왜그러나 자세히 보니 눈이 빨간색이라 기분이 나빠 보인다는 걸 알게되셨다. 그래서 그 어르신이 그 눈을 검정색을 칠해놓으셨다고 한다.


 - 남산자락에 있는 이태원 주공아파트, 대림아파트는 일제시대에 포방터, 사격장이었다. 해방직전에 포격장 공사가 끝났는데, 그때 축대를 쌓고 유탄이 뚫고 나가지 못하게 통나무 벽 안쪽에 자갈을 채워 튼튼하게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그 두꺼운 나무를 가져다 집을 지었다.


 - 이태원동의 군사정권 실세들이 주로 살았던 큰 집들을 동네사람들은 ‘도둑촌’이라고 불렀다. 행정지도에도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권력층에 대한 당시 주민들의 인식이 담겨있는 지명이다.


 - 보광동 일대에서 거의 평생 살아온 어르신들은 이태원하면 ‘양색시’나 ‘풍기문란’, 혹은 ‘외국인 사건사고가 많은 동네’라고 하면서 거기 가면 아이들 버린다고 말리는 친척들의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인터뷰했던 어르신들의 공통된 반응은 본인 아이들 중에 어긋나게 자란 아이 없이 모두 잘 자라 주었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비춰진 장소에 대한 이미지와 실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장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 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렇듯 한 장소는 객관화된 데이터 이전에 어느 누군가에게는 청춘을 다 보내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웠던 삶의 터전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개인들의 미시적인 이야기들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장소 안에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사건이 충돌하고 만들어진다. 개인들의 스케일 감각을 따라 여행하는 이러한 작업은 정확성을 포기하는 대신 현재의 한 지점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한 관점에서 유효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인사이트씨잉(Insightseeing) 조성배, 나광호, 이정훈, 최형욱 네 명의 작가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그룹이다. 특정지역과 장소를 탐험하며 아카이브북 출판 및 프로젝트 전시 작업을 해왔다. 경기창작센터123프로젝트에서 <선감도프로젝트>(2012), 창동창작스튜디오 지역연계프로젝트<창동여지도>(2013), 리움미술관 ‘10주년기념전’ <잇!태원:감각의지도> 프로젝트(201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작자들의 도시전’ <패키트:성수동프로젝트>(2015)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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