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80)순수미술과 미술치료

유미

현대인들의 눈은 즐겁다. 아름다운 도시의 외관과 인테리어,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패션들, 쇼핑센터에 진열되어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상품들... 이러한 시각 미술들은 길을 걷던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그들의 주머니를 열도록 자극한다. 그렇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만나게 되는 회화나 조각들은 어떨까? 우리는 쇼윈도의 상품을 보며 “예쁘다”, “세련됐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살까 말까 망설이기는 하지만 이것을 디자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회화나 조각 등의 순수미술을 접할 때는 다르다. 작가의 이름은 무엇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궁금해한다. 시각적 자극을 준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회화나 조각은 분명 상품화된 미술과는 다른 색다른 경험을 갖게 한다.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삶과 정신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며 작품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결합된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나는 이것이 다른 미술과는 구분되는 순수미술(純粹美術)만이 갖는 최고의 정서적 가치라 말하고 싶다.


순수미술에는 작가의 삶이 담겨있다. 작업에 대한 욕구가 일어나면 작가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되고,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에 몰입한다. 이때의 이미지는 심상(心像), 즉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결론적으로 순수미술은 작가의 유형과 무형의 환경에 영향을 받아 탄생하는 삶의 예술적 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순수미술은 감상자와 정서적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순수미술의 특징은 ‘미술치료’와 유사한 점이 많다. 미술치료 역시 삶의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수미술작가의 예술적 경험과 순수미술에 대한 감상자의 감상적 경험이 결합되어 탄생되었다고 보여 진다. 그렇기에 순수미술은 분명 치료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좌) 유미, <물고기 가족과 새들의 휴식>, 2014, 나무판 위에 아크릴, 52 × 73 cm.

필자의 작업이다. 작업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붓을 들게 되면 늘 만나게 되는 것은 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림을 통해 나는 먼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현재의 소망을 떠올리게 된다. 이 과정은 나에게 삶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는 치유적인 힘을 준다.


우) 풍경, <종이 위에 색연필>, 29.7 × 73 cm. 우울증 환자의 작품.

빽빽이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바람에 흔들려 쓰러지는 나무가 보인다. 다른 나무는 꼿꼿하게 서 있는데 왜 유독 한 나무만이 쓰러지고 있을까? 작가는 자신의 우울감과 나약함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있으며, 그림을 통해 다른 나무처럼 일어서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림은 이처럼 자신을 인식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순수미술이 치료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창작과정에서의 예술적 욕구, 삶의 경험의 형상화, 작업에 대한 만족감, 미술을 통한 작가와 감상자 간의 정서적 교류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미술치료사 중에는 순수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 창작과정안에서의 치유적 경험은 직업으로서 미술치료사를 선택하게 되는 충분한 동기가 될 것이다.


순수미술과 미술치료의 차이는 작업행위의 동기에 있다. 순수미술은 예술적 창작행위의 욕구이며 미술치료는 치료사에 의한 창작행위의 동기유발이다. 미술치료사는 자신의 치유적 경험을 내담자가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자신의 심상(心像)과의 만남이다. 내담자는 작업을 통해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으며, 이로써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왜곡된 부분을 수정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후 변화된 모습들은 다시 작품의 변화로 나타난다. 정신건강을 위한 많은 치료방법 중에서 이만큼 아름다운 치료과정이 또 있을까?


인간이 어떤 이유로 미술작품을 제작했을까? 그 동기나 목적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의되어왔다. 다산과 사냥의 염원을 담았던 원시 미술에서부터 현재의 미술치료에 이르기까지 돌아본다면, 험한 자연환경 속에서 무서운 맹수와 싸워가며 생존해야 했던 우리의 조상들과 현대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 상황 속에서 미술은 각 시대마다 삶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꼭 필요했던 치유적인 힘은 아니었을까?



유미(1968- ) 경희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 수료.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미술치료교육학과 초빙교수. 아트포미미술치료연구소 소장.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 부회장 등 역임. 『현장적용을 위한 미술치료의 이해』 외 다수 저술.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