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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차학경’에 대한 10년의 기억과 틈새들

김지하

2009년 필자가 차학경의 영상 작업들을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그녀의 대표 설치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망명자>와 <통로 풍경>을 전시 할 때만 해도 극소수의 전공자들과 교수님 손에 이끌려 온 대학생들이 대부분의 관객이었다. 당시 <망명자>는 차학경이 이 작품을 처음 전시했을 때와 거의 똑같이 구현했었으나 여러 가지로 아쉬웠던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11년 김달진미술연구소는 개소 10주년 설문조사에서 현대미술 작가 중 재조명되어야 할 작가로 ‘차학경’이 선정되었음을 알렸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10년 동안 축적한 자료들과 교류들은 한국미술의 역사를 더욱 풍족하게 만들었고 그동안 함께 했던 연구자와 기획자들이 선정한 결과이기에 ‘차학경’의 이름이 중요하게 각인된 기회를 만들었다.


전시 현장


작년 필자는 광주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차학경 레퍼런스’라는 그녀에 관한 전시를 다시 기획하였다. 아카이브 전시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차학경을 연구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소개한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을 접한 지가 10년 조금 넘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한다기에는 매우 짧은 기간이다. 생각해보면 차학경이 학부시절을 포함해서 작품 활동을 한 것도 10년 남짓일 것이다. 그 사이에 영화, 사진, 퍼포먼스, 설치, 소설, 번역 등까지 다양한 이력들을 남겼고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작품들에 다가가기 위해 여러 연구자나 작가들이 그녀의 흔적들을 찾아다닌다.


‘차학경 레퍼런스’는 차학경의 몇 편의 비디오 작업들과 저서, 사진들, 그녀의 창작과정에서 참고했던 자료들, 그리고 차학경이라는 인물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병치하였다. 그녀의 작업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는 버클리미술관이 이전 준비를 하던 참이라 차학경의 자료를 다양하게 빌릴 수는 없었지만 영화, 연극, 음악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본 전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 덕분에 관객들에게 전시 자체의 볼거리들은 다양하게 제공해줄 수 있었다. 차학경이 참고했던 자료들에는 대학시절 수강했던 베르트랑 오구스트 교수의 영화수업 자료들이 있는데, 그녀의 영상작품에서 자주 사용되는 스크린과 프레임의 영화장치개념은 오구스트 교수의 수업에서 자주 소개되었던 프랑스 영화학자들의 이론들을 차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오구스트 교수는 이번 전시를 위해 당시의 수업자료들과 개인자료들을 보내주었고 몇 차례의 메일을 통해 그녀의 학창시절과 당시의 상황들을 들려주었다. 그 자료들에는 칼 드레이어의 <드라큘라>가 한 프레임씩 프린트된 슬라이드도 있었는데, 차학경은 연구실에까지 찾아와 슬라이드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녀의 책 『Apparatus』에도 <드라큘라>의 한 장의 프레임이 삽입되어 있다. 몇 년 동안 차학경과 친분있는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하는 이수진의 작품에는 그녀 주변의 사적인 기억들이 담겨있는데, 오구스트 교수의 자료들과 인터뷰이들의 목소리가 공명을 이루어내면서 작가의 부재로 인해 작위적인 근거들을 만들어내는 오류들을 줄일 수 있었다.


살아있는 작가들을 아카이빙한다는 것도 기록의 변형의 우려들이 존재하지만 작가의 한정된 활동에서 끊임없이 자료들을 생산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더욱이 작가가 현존하지 않을 경우는 자료의 근거들이 작품의 새로운 히스토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 필자 역시 차학경의 자료들을 찾아다니지만 어디까지가 꼭 필요한 자료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학경 레퍼런스’는 그녀의 모든 것들을 아카이빙 해보자는 야심찬 기획에서 한 발 물러나 과연 이 자료들이 차학경을 설명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반문을 필자와 관객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연구든 레퍼런스는 완벽히 채워질 수 없으며 현재까지의 임계치만을 드러낸다. 수 년 후에 차학경이 어떤 인물로 서술될지는 모르지만 서문에서도 밝혔듯 아카이브 전시라고 하기에는 스스로 질문들이 많았기에 그러한 고민 속에서 ‘차학경 레퍼런스’라는 전시명을 붙였다.



김지하(1979- ) 홍익대 미술학 박사. 홍익대, 한양대, 서울여대 등 강의 및 매사추세츠주립대 객원연구원, 현 한국영화학회 국제학술이사, 국립아시아문화 전당 아시아 실험영화 아카이브 책임연구원. 국내외 실험영화, 미디어아트 관련 전시기획. 『차학경 예술론』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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