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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국가와 미술의 변증법 : 국립현대미술관 1986년 체제

김동일

국립현대미술관 준공개관기념전, 1986

예술은 언제나 사회공간의 지배권력이 끼치는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국가와 자본은 당대 예술의 형태를 주조하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그러한 사회적 힘과 예술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자본과 국가의 요구와 예술가들의 실천이 작품의 형태로 절충되는 지점이다. 그 가운데서도 국립미술관은 국가권력과 예술이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국립미술관은 말 그대로 국가가 설립한 미술관이다. 국가는 정치적 지배의 최고 주체이다. 국가가 미술관을 설립하는 이유 역시 정치적 지배의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예술가들은 외부 권력과의 투쟁을 통해 예술의 가치를 실현해 왔다. 국립미술관은 국가의 개입과 예술(가)의 저항이 파열하는 투기장(Arena)이다. 국가는 예술에 대한 개입을 통해 정치적 지배 의도를 관철하려 들고, 예술가는 국가의 힘으로부터 예술의 자율성을 지켜내려 한다. 

국가와 예술의 관계는 ‘투쟁’과 ‘공모’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예술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일방적이고 강제적이지만 다른 한편 국가 예산의 ‘지원’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예술의 저항 역시 맹목적인 투쟁이 아니라 국가의 개입을 수용하되 국가의 권위를 당대 예술가들의 실천을 사회적 실재로 공인하기 위한 자원으로 이용했다. 우리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사회의 격동기에서 국가의 개입과 예술의 저항이 맹렬하게 충돌하고 공모하면서 한국미술의 동시대적 형태를 형성해나간 사례라 할 수 있다. 역설적인 사실은 예술장 내 최고의 상징자산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정치적 독재체제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예술장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권위는 사회공간에서 국가의 영향력에 비례한다.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립이 4.19의 민주화의 열망을 5.16으로 짓밟았던 박정희 정권의 산물이었다면 1986년 과천으로의 확장 이전 역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압적으로 진압했던 전두환 정권의 산물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태생적으로 정치권력의 비민주성을 예술의 순수성을 통해 표백하기 위한 문화지배의 결과물이었고, 이제 ‘대가’로서 국가와 등가되는 권위를 누리게 된 국전 수상자들이 독재자들과 악수하는 장면은 ‘대한늬우스’의 단골 레파토리가 되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이 독재로 상징되는 비민주적 국가권력의 개입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1986년 과천 이전과 더불어 미술사와 미학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은 국가의 지나친 개입을 막아내는 저지선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예술계를 이해를 국가의 문화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통로로서 기능했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국립현대미술관을 거쳐 간 미술계의 원로들을 존경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그들 없이 오늘날 한국미술의 풍경은 이나마도 가능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과천시대 국립현대미술관을 이른바 ‘전문가체제’로 특징지울 수 있다면 그 때의 전문성은 곧 미술계를 전체를 대변하는 ‘대표성’과 그 대표성의 전제로서 ‘윤리성’을 포함한다. 자율적 예술계의 제도적인 권위는 예술계 구성원들의 ‘신뢰’와 ‘믿음’에 의해 지탱되었고, 그들 전문가들은 주어진 한계 속에서도 미술계의 신뢰와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요즘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선임을 둘러싼 문제들로 시끄럽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국가권력으로 홀대 받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그 직위에 부여되는 미술계의 신뢰와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관장은 어느새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미술계의 신뢰와 믿음을 대변하지 못한다. 신뢰가 깨진 미술계에서 예술가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 받지 못한 채 방치된다. 그 절망의 공간에서 지극히 희박한 가능성을 놓고 무한 경쟁을 벌이는 무력한 예술가들의 전략들이 난무한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박래경의 팔순 기념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큐레이터협회 초대 회장으로서 열악한 환경에 놓인 큐레이터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노력이 새삼 생각나는 하루다.


- 김동일(1969- ) 서강대 사회학과 학부, 석사, 박사.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현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재직. 한국사회학회 논문상(2009),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부분(2011) 수상.『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2010)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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