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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이미지 소비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

안진국

스마트폰 사진첩 이미지


CCTV화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대세이며, 미덕인 시대이다. 대량 소비 시대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소박한 소유를 부르짖는 외마디 외침을 묵살하며 소유에 대한 병적 집착증에 시달리게 한다. 미술 현장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기술 혁신이 8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서 급속도로 디지털로 수렴되기 시작하면서 폭발적 디지털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보는 시대, 즉 이미지 소비 시대를 우리 앞에 끌어다 놓았다.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모니터, 평면 텔레비전 등의 ‘유리감옥(The glass cage)’ 갇혀 수많은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사진 기술의 발달이 ‘보는 방식’의 전환을 가져온 것처럼, 다량의 이미지 소비 시대는 또 다른 ‘보는 방식’의 변화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한마디로 많이 보고 빨리해치워 버리는 ‘보는 방식’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멀티태스킹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장면이 3-4초마다 바뀌는 영화를 보고, 100개에 달하는 TV 채널을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리고, 스마트폰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수많은 사진을 넘겨본다. 스마트폰 사진첩과 CCTV의 출력화면은 바둑판 모양의 격자 형태로 여러 이미지를 동시에 뿜어내며 각각의 이미지가 지닌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무력화시킨다. 이러한 보는 방식의 변화는 관람자의 관람 태도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품 제작 방식, 작품의 전시 형태에 변화를 가져왔고, 결국 우리들의 인식 체계를 변화시키려는 강박적 작용을 하고 있다.


빈틈없이 작품을 걸어놓은 아트페어 전시에서 그 많은 작품 이미지를 관람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많음을 미덕으로 여기는 현재의 이미지 소비 패턴이 익숙해져서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아카이브 전시들에서 현기증 날 정도로 많은 이미지를 다닥다닥 붙이는 전시 방식도 이미지 소비 패턴과 관련 있어 보인다. 또한, 작은 이미지들을 수십 장씩 한 벽면에 가득 채워 전시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작가들이 많아진 것도 이미지 소비 패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재의 이미지 소비 패턴은 하나의 작품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많은 작품을 보유한 한 명의 작가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는 듯하다. 작가의 명성이 곧 작품으로 이어지는 현상-이러한 경향은 기술복제시대 이전부터 미미하게 존재하다가 사진 기술의 발달부터 점차 증가하였다고 봐야 타당할 듯싶다. 


미술 작품 평가 시스템의 변화는 작품에서 작가로 초점이 이동한 현상을 확연히 보여준다. 소위 미술 공모전이라 불리는 미술 경연 대회는 90년대까지만 해도 보통 하나의 실물 작품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이제는 작가의 여러 작품 이미지로 평가하는 포트폴리오 심사로 대부분 바뀌었다. 이후 2차로 두 작품 이상의 실물 작품의 전시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심사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기술 발전에 의한 이미지 출력과 편집의 간편성 및 저비용성과, 공모의 변별력 확보가 맞아떨어지면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원본과의 완전한 동일성이 확보되지 않은 다량의 이미지를 심사하여, ‘작품’이 아니라, ‘작가’를 발굴하는 형태로 평가 방식이 전환됐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상호, <그랑기뇰의 가면>, 2014


기술복제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던 시대는 어땠을까? 재현된 이미지는 오직 작가의 손에서 나온 소량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대. 그때의 사람들은 하나의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을 것이다. 작품을 누가 그렸는지를 중요시하기보다 그저 하나의 작품에 깊숙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를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느꼈을 것이다. 자문해본다. 나는 ‘과연 한 작품을 오래 응시하며 깊숙이 빠져든 적이 있는가?’ 묻는다. ‘당신은 과연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작품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작가의 작품들을 보는 것이 아닌,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하게 조명되는 소박한 이미지 시대가 그리워진다.



안진국(1975- ) 홍익대 대학원 석사.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 양주시립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입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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