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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현대커미션, 테이트모던 터바인홀의 제2막을 열다

지가은

<빈터>는 마치 선박의 나무 갑판을 연상시키는 삼각형의 비계(飛階) 구조물 두 개로 이루어진 정원의 형상이다. 그 위로는 런던 전역의 공원에서 채집한 23톤의 흙으로 채워진 240개의 화분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정기적으로 가로등 불빛과 물도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화분들은 아무것도 심지 않은 ‘빈터’로 남아있다. 본래의 땅이 배태한 자양분과 생명의 기운이 스스로 발현될 때까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무엇인가 자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가능성 혹은 불안감, 그리고 그 결과의 기다림 자체가 이번 프로젝트의 전 과정이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그 목적을 막론한 다양한 형태의 이주 문제와 그로 인한 여러 사회적, 심리적 갈등은 주로 이렇게 완전히 낯선 상황을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그 여정의 결말은 극복일 수도 있고, 실패일 수도 있다.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 <빈터(Empty Lot)>


첫 삽을 뜬 현대커미션의 시작점과 여러 갈래의 미래 가능성을 은유한 <빈터>의 메시지가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터바인홀의 제2막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첫 작품이 베일을 벗자, 그간 쌓였던 아쉬움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역대 전시 작품들은 그 규모를 떠나, 공간을 압도하는 공감각적 에너지와 그 안으로 관객을 이끄는 상호 교감을 이루었던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155m 철탑 3개와 거미 <마망(Maman)>을 함께 설치했던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나는 한다, 되돌린다, 다시 한다(I Do, I Undo, I Redo, 2000)>가 그랬고, 자궁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트렘펫 모양의 조형물을 선보였던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마르시아스(Marsyas, 2002-03)>가 그러했다. 인공 태양 아래에 관객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진풍경을 탄생시켰던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날씨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 2003-04)>나, 실제로 터바인홀 바닥을 관통하는 길고 깊은 균열을 만든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의 <쉽볼렛(Shibboleth, 2007-08)>은 미술관 공간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다. 말하자면, 이렇게 공간에 대한 통찰력으로 지적, 미적 자극을 주던 터바인홀 전시 작품의 등장과 그 파급력에 점차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대커미션 11년의 기대

2015년부터 2025년까지, 현대커미션이 약속한 기간은 11년이다. 이는 테이트모던 역사상 가장 긴 파트너십이다. 유니레버 시리즈도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유지했지만, 애초 5년의 후원 계획이 연장된 것이다. 실제로 유니레버는 기업 이미지 제고에 톡톡히 이바지한 이 협업으로 후원금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고, 테이트모던은 유니레버 시리즈를 향한 국제미술계의 주목과 대중적 관심을 양분 삼아, 영국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성공했다. 현대자동차는 이렇게 동반 성장의 쾌거가 입증된 파트너십을 선택하면서 과감한 장기 후원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한국 기업에 대한 인지도 상승으로 점화될 수 있는 한국 현대미술, 나아가 아시아 근현대미술에 대한 관심도 확대라는 동반 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커미션 외에도 테이트모던의 아시아-태평양연구소(Tate Asia-Pacific Research Centre)와의 협력 아래, 미술관이 백남준의 작품 9개를 구매할 수 있도록 병행 지원했다. 테이트모던은 작년 11월 이를 바탕으로 한 백남준 상설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한국 현대미술 홍보 채널을 위한 현대커미션과 연구소의 보다 다양한 협업 지점과 시너지도 점쳐 볼 만하다. 이제 크루즈비예가스의 <빈터>처럼, 제2막의 터바인홀에 뿌려진 새로운 씨앗이 1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어떤 변화의 결실을 가져다줄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가은(1984- ) 홍익대 예술학과 졸. 런던 골드스미스대 현대미술이론 석사. 동대학원 비주얼 컬처 박사과정 재학. 현재 월간미술 런던통신원, 온라인 큐레이토리얼 리서치 플랫폼 미팅룸 아카이브 에디터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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