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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빛고을 광주에 세워진 동시대를 향한 사랑의 모뉴먼트, <비움의 십자가>

김달진

<비움의 십자가(전체 원형)>, 이미지.

 <세월호>, 2016, 금산석, 240 × 120 × 120 cm.

<백지사형>, 2016, 금산석, 240 × 120 × 120 cm.

순교와 민주의 꽃
<비움의 십자가>는 폭 12m, 높이가 8m에 이르며 27점의 개별적인 금산석 조각이 모여 4개의 형체를 이루고 그 사이에 여백으로 구성된 3개의 십자가(좌도, 그리스도, 우도), 뒷면에는 콜라주로 먼저 작업되었던 <그리스도와 소통>을 비롯한 14점의 드로잉이 음각으로 부조되었다. 김희중 대주교와 옥현진 주교의 추진으로 천주교 광주대교구청(광주 서구 상무대로 980, T.062-380-2801)에 위치하는 이 작품은 종교적인 매체로부터 더욱 확장되어 당대의 비극을 아우르고 상처와 고난을 기록하여 동시대를 초월하는 예술성을 띄게 되었다.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성인>과 <피에타>를 통해 표현되는 선교 초기의 박해와 순교와 같은 종교적 의미와 함께, 식민지의 고통과 민족 내부의 다툼을 담은 6.25 한국전쟁, 푸르렀던 그 해 5월의 학살을 떨칠 수 없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차디찬 바다가 삼킨 무고한 죽음 앞에 무너져 내렸던 4.16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이 시대를 관통하는 비극을 함께 어루만지고 종교적 굴레를 넘어 다른 종교와의 소통까지 끌어안는 대작이라고 작품을 설명한다.

지난 2월 18일 김희중 대주교를 직접 뵙고 가톨릭에서 성화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좀더 들어볼 수 있었다. 초기 카타콤 벽화에서 보듯 예술은 종교를 시원으로 삼고 있으며, 성상과 성화는 종교적으로는 그 자체의 힘 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제례의식의 정화되고 정제된 기도의 매개자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번 작품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순교자의 정신을 계승하고 숭고한 믿음과 사랑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교훈과 신앙고백으로 이어지는 영적인 공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좌측부터 김달진 소장, 김희중 대주교, 이춘만 작가

<그리스도와 소통>, 2016, 복합재료 

조각가 이춘만의 독창적인 추상성
3월 축성식에 맞추어 광주대교구청 내에 위치한 갤러리현에서 이번 작품의 원형, 도면, 스케치, 콜라주가 출품된 이춘만 작가의 20회 개인전, 동시에 5번째 성(聖) 미술전이 열린다. “인체는 모든 언어를 은유적인 암호로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 암호를 보는 것은 내적 형태의 영혼까지도 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표현대상의 초월적인 인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조각가 이춘만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홍희기 큐레이터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자신만의 변형도로 계산해내는데 탁월하다고 말한다. 인체의 황금비례를 5등신으로 맞춰 새로이 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손, 발, 얼굴, 형(形)이 일치될 수 있도록 같은 비례의 변형도를 정한 후, 정제된 거친 터치로써 직선과 면의 크기, 그 배경의 공간 크기를 대칭비례로 계산하여 작품을 완성해, 독일 미술비평가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이 저서 『미술과 시지각(Art and Visual Perception, 1954)』에서 말한 것처럼 단순한 것을 먼저 인식하는 시지각의 특성을 극대화 한다. 

예술가라기 보다는 노동자
예술과 학문이 노동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단순한 기술과 재치로 전락해가는 현재에도 그는 꿋꿋하게 노동으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노동이 무엇인지를 묵묵히 드러내며 자신을 노동자로 자처한다. 이를 위해 이춘만은 일상과 사교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마치 속세의 지붕을 벗어난 노숙자처럼 구도와도 같은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그의 작업은 사실적인 기법을 통해서는 표현할 수 없는 암호와 상징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여 우리 눈 앞에 드러낸다. 그 과정은 마치 노마드(Nomad, 유목민)와 같이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맥락을 이어나가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더욱 확장한다. 이번 작품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시대인들과 공유하는 기억을 포괄한다는 점이다. 채수일 전 한신대 총장은 ‘기억(記憶)은 기념(記念)과 다르다’고 말한다. 기념은 과거의 사건을 반복적으로 재현하지만 그 속에 그 사건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행위가 없으면 형식적인 제의와 축제에 불과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적 사건을 위해 준비된 대부분의 기념비와 기념식은 그 사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완성되지 못한다. “망각은 추방으로 인도하고 기억은 구원을 촉진한다.” 나치 정권에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기억하는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Yad Vashem) 홀로코스트 기념비에 기록된 말이다. 하지만 광주대교구에 세워지는 <비움의 십자가>는 그 ‘기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토착화에 대한 관심 이상의 것이고 인간적 삶이 제기하는 궁극적 관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입과 귀를 막아야 들리고 눈을 감아야 볼 수 있고 비워야 채워지는 전혀 다른 현실에 대한 그리움이다.



- 김달진(1955- ) 중앙대 문화예술학 석사. 문화관광부 문화부장관 표창(1992, 2008), 월간미술대상 특별상(1997), 한국미협 올해의 미술상 미술문화공로상(2009) 수상.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 역임. 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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