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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퍼포먼스의 해방구(解放區), 전용 공간의 필요성

문재선

현재 서울에는 실험적인 퍼포먼스가 주도적으로 벌어지는 예술 공간이 전혀 없다. 작품을 수행하는 발표 장소로써의 기능뿐만 아니라, 예술가들 간의 만남과 서로의 관계를 수시로 교차할 수 있고, 우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처소가 없다는 것이다. 소위 아지트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이 허용되는 아웃사이드는 어느 곳에서도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아시아 22개국 퍼포먼스 공간과 페스티벌 맵, 리서치-판아시아(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 대구미술관, 2018


현재 현대미술은 종합예술이라는 수용성을 바탕으로 새로움의 기폭제를 마련해나가고 있는 시점에 있다. 그리고 100여 년 전부터 기성 사회에서의 규범과 규제를 벗어나 과감성을 발휘하여 혁명의 예술 활동들을 기록해왔다. 당시의 퍼포먼스 예술가들에게는 ‘카바레 볼테르 Cabaret Voltaire(스위스 취리히, 1916- )’라든지 ‘세시봉 C’est si bon(한국 서울, 1966-1970년대)’과 같은 아지트 예술공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침없는 도출을 해낼 수 있었다. 마치 동력기관과도 같아서 실험과 교류의 터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엄격한 발표 무대로써의 공간들만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한국 행위미술 50년:1967-2017’ 특별전
‘아시아 행위예술 아카이브_문재선 콜렉션’, 대구미술관, 2018


일찍이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정통주의 미학에 반기를 들고 나섰던 아방가르드 문화예술 운동을 잠시 들여다보자. 지난 2009년에는 ‘세계 퍼포먼스 아트 100년’을 대대적으로 기억하고 2016년에는 ‘다다 100주년’을 기념하였던 해였다. 그리고 올해 국내에서는 ‘한국 행위미술 50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페스티벌이 줄이어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제도에서 벗어나 있었던 퍼포먼스아트라는 언더그라운드의 활동들이 이제는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 속으로 들어와 중요한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헤쳐나갈 수 있는 실험실과 같은 퍼포먼스 활동을 위한 전용 공간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라비린트갤러리 외부 전경, 루블린, 폴란드, 2013, 제공-라비린트 갤러리


현재 서울에서는 수없이 많은 문화공간이 도처에 새롭게 생겨나고는 있지만 주로 문화 향유를 목적으로 하는 곳들이 많다. 경계를 철폐하려고 노력해오는 퍼포먼스 예술가들이 무한한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는 안전망으로써의 장소로 사용하기에는 사실상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규정의 엄격함을 준수하는 행정가들의 노고를 통해 주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러한 예술공간에서는 아쉽게도 탈주할 수 있는 모험을 일삼기에는 도무지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신생 공간 개발이라는 포말에 갇혀버려 창작 활동 지원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향유와 유통이라는 대다수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다 보니 매체 자체에 관한 관심들이 도외시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상실해버린 균형 감각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의약품업계에서 약품을 사전에 검증하고 분석하는 기초 실험연구소가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구매자와 연구자의 건강은 뒤로한 채 기존의 약품을 판매하는 약국의 개수들만 늘려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화학 반응을 논하고 안전한 검증 결과를 놓고서 토론하고 분석할 여유는 사라지고, 수많은 거래처인 약국에 납품해야 할 약품들의 수량만 늘려가는 양상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락제> 국제액션아트페스티벌, ODA갤러리, 피오트르코프 트리부날스키, 폴란드, 2013, 사진-문재선


기초예술을 장려하는 창작공간들마저도 도시 개발에 휩쓸려 이익 추구를 권장 받는 특성이 점점 더 강해져 가는 사회적인 양상이 뚜렷해 보인다. 우리에게는 60-70년대 ‘세시봉’, 80년대 ‘ 공간사랑’을 비롯하여 90년대 초 홍대 앞 문화를 견인하였던 ‘황금투구’, ‘발전소’ 그리고 2000년대 초에 ‘아이스자이트’, ‘씨어터제로’ 등 훌륭한 공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층적인 수용이 가능한 그러한 해방구는 오래전에 모두 사라져버렸다. 향유층을 위하여 생활문화를 집중해나가는 현재의 문화정책 방향도 중요하지만 원래 있었던 퍼포먼스 예술 활동들의 순기능도 공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함께 수용되는 인식들이 되살아나기를 바라본다. 현대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기초실험실과도 같은 퍼포먼스 예술공간 하나 즈음 다시 생겨나기를 학수고대한다.


- 문재선(1975- ) 퍼포먼스 작가, 퍼포먼스 그룹 SO;RO 대표. ‘한국 행위미술 50년 1967-2017’ 특별전 ‘아시아 행위미술 아카이브 문재선 콜렉션’ 발표(2018, 대구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 ‘아시아의 퍼포먼스 아트-자원분포 현황 및 콜렉션 구축 심화방안 연구’ 책임연구원(2016), 아트레지던시페스티벌협의회 예술감독(2016) 한국실험예술제 프로그래머(2002-04) 역임. 홍대앞문화예술상 수상(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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