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22)현대미술 생태계의 위계에 대한 고민

전민경

어렸을 적부터 괜히 반항적인 아이들이 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 행동의 근원이 왜 그렇게 되었냐는 질문은 공허할 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시쳇말로 ‘오춘기’라 불리는 성인들의 질풍노도기는 20대의 학업 이후에 대한 막막함, 30대에 들어서 웬만한 직장에 결혼에 하고자 했던 것을 이루었는데 정작 꿈꿔왔던 삶과는 멀어진 것 같은 허무함, 40대의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라 불리는 중년의 신체적/정신적 위기에 이르기까지 삶의 시즌과 상관없이 찾아오고 인간의 반항은 이에 따라 여지없이 발생한다. 반항은 기본적으로 무엇에 억눌렸을 때 생성되는 반응이다. 평균적으로 이유 없이 그냥 ‘막’ 생기지는 않는다. 설사 시기적절하지 않은 당황스러운 반항의 현상도 따지고 보면 그 이면에 그럴만한 근본적인 심리적 이유와 관계의 어려움이 있는 경우들을 다수 경험했다.



William HA WKINS(1895-1990), Eagle and Snake, 1979-1981,
Enamel on repurposed board, 32×39in


내가 이렇게 반항에 대해 시쳇말로 ‘싸고도는’ 이유는 나 또한 기질적으로 반항심이 많은 인간이라 여김을 받았고, 그 때문에 입장에 대한 위아래, 역할에 대한 상하 구분이 비교적 뚜렷한 한국에서의 삶이 그다지 순탄치는 않았기 때문에 더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일지 모른다. 이러한 위계에 대한 거부감이 근본적으로 내가 소싯적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데 아마도 미술뿐만 아니라 다수 창작의 길을 걷는 존재들은 섬세한 상황은 각자 다르더라도 비슷한 경험치들을 공유하지 않을까 싶다. 보편 타당한 것들이라 불리는 것들이 개인에게 힘겹고, 적용하기 어려울 때 주어진 환경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는 너무도 당연하다. 흔히 현대미술에서 통용되는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가 일반적인 제도권에 반하는 범주로서 연관되기는 하지만 내가 언급하는 것은 기괴하거나 사회적 고립에 따른 정신적 분열로 해석되는 아트 브뤼(Art Brut)의 암묵적인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내가 논의하고 싶은 지점은 예술에서의 위계라는 것이 기존의 사회생활에서 통용되는 그것과 다른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쉽사리 보편화하거나 기존 사회의 질서들을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특수성은 창작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환경이라는 것과 지적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가 기존의 비즈니스에서 통용되는 일차원적인 개념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업적인 목적으로 혹은 상업적인 융통을 함의하는 예술의 경제활동도 존재하지만 내가 논의하고 있는 구체적인 지점은 ‘구조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다. 창작은 개인의 독자적인 성향과 기질을 기반으로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렇게 채집된 관점과 흔적은 일률적인 환경이 아닌 개인의 고유함을 존중하고 이해받는 과정에서 촉발된다. 따라서 이를 주요한 원천으로 움직이는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위계’란 개인의 잠재력을 제한하기 쉽다. 위계가 야기할 수 있는 온갖 불필요한 감정적 소모와 노동에 대한 부차적인 지점을 이 짤막한 생각의 기록에서 논외로 한다해도 ‘위계’라는 개념 자체가 지니는 제한성이 궁극적으로 명확한 역할의 구분을 위한 것 이기보다 일련의 가능성과 예측불허의 반가운 돌파구와 전환(Transformation)에 대한 기대를 저해하기 충분하다.

때문에 현대미술을 제도권과 기관을 기반으로 생태하는 다수의 환경에서(그것이 조직이던 이를 행하는 역할에 대한 것이던 간에) 위계의 현상은 일반화하기 어려우나 그 다양성 사이에서 지속되는 위계(Hierarchy)의 개념에 대해 그 실효성에 대한 평가와 생태의 동력을 위함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민경 현대미술 컬렉티브 그룹 ‘더 그레잇커미션’의 대표. 국제갤러리, PS1 MoMA, The Kitchen, 아르코미술관 등에서 근무. 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예술위원 역임. 아트바젤 홍콩 UBS 강의 및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심포지엄 아트북과 카탈로그레조네 등 강연.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