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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③ 출판과 미술, 그리고 지역성

이나연



③ 출판과 미술, 그리고 지역성:

_프린티드 메더, 도쿄 아트북페어, 테이트의 퍼블리싱 그리고 다시 독립출판



지난 글에서 미술계 글로벌 대형행사의 의미와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성패에 관해 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규모 국제행사의 지형을 살핀 것은 결국 지역성에 대해 논의를 하고 싶어서였다. 현대미술에서의 오프라인 글로벌 대형행사의 존재 의미가 옅어지고 있다. 미술관이나 아트페어의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성공과 실패를 보여주고 있지만, 많은 자본과 노력이 투여되는 대비 성공 확률이 몹시 낮다. 자본주의 논리로 만들어내는 몸집만 큰 미술행사 말고,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미술행사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야 할까? 특히나 기반시설도 생태계도 마련돼 있지 않은 변방의 지역에서는 어떻게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가?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지역에서 그 대안을 실험하고 고민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현대미술 활동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는 지점은 미술출판이다. 물리적인 제한을 받는 전시와 행사보다, 출판은 자본의 제약도 가장 덜 받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출판은 광범위하게 웹진과 블로그, 소설네트워크서비스같은 1인 미디어를 포함하고 있어서, 사실 콘텐츠만 있다면 자본이 전혀 없이도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사실 미술출판, 독립출판의 역사는 현대미술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기도 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서울의 북서울미술관에선 ‘언리미티드에디션’이라는 독립출판물 페어가 벌써 10회째를 맞아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다. 초기부터 관람자이거나 참여자이기를 반복하며 이 행사를 지켜본바, 독립출판물이나 아트북에 대한 관심은 이제 대중화됐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많을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1 오전 10시에 행사를 오픈하기도 전에 관객들이 줄을 몇십 미터나 선다.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인파로 가득 차고, 전국 이곳저곳의 작업실에서 작은 규모로 출판을 하던 이들이 오랜만에 독자들을 면대면으로 만나 생기가 넘친다. 베를린에서도 아트북 페어가 같은 시기에 열리고 있었다.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도 언리미티드에디션과 비슷하거나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아트북 페어를 열고 있다. 페어를 주도하는 건 독립출판씬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진 서점이나 출판단체라서, 민간이 주도하고 기업과 기관에서 후원하는 형식이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도쿄아트북페어의 경우 

2017년에 방문한 도쿄아트북페어(Tokyo Art Book Fair)는 빔스와 시세이도, 도쿄 바이크 등 일본 대표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었다. 협찬에서 후원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함께 하고 있지만, 입장에서부터 가장 많이 노출되는 브랜드는 빔스(BEAMS)다. 행사장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나눠주는 리플렛과 지도 등을 빔스의 주황색 비닐가방에 넣어주면서 도쿄 아트북페어의 첫인상이 시작된다. 국제 도서전의 형식을 가지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독립출판, 독립서점, 출판을 활발히 하는 갤러리들이 모여 판매도 하고 네트워크도 하는 행사다. 2009년에 시작, 2017년 당시 9회째를 맞은 행사는 언리미티드에디션처럼 매년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규모란 전시장의 규모뿐만 아니라 참여자 수와 관람객 수 모두가 확장되고 있음을 말한다. 


한국에선 독립서점인 유어마인드가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페어장에 마련된 아시아 서적 특별전에서 큐레이터를 맡고 있기도 했다. 언리미티드에디션의 창립자이자 유어마인드의 운영자인 이로가 2014년에 남긴 도쿄아트북페어 참가후기에 따르면, 2012년 언리미티드에디션에 도쿄아트북페어의 운영팀인 진스메이트(Zine’s Mate)가 초대 부스로 참여하면서 해마다 번갈아 서로의 페어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북페어가 진정한 해외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로의 참가후기에는 나처럼 단순히 리서치를 하는 이로서의 시각이 아닌, 관계자, 게다가 지속해서 하나의 국제행사에 참여해온 이로서의 시각이 담겨 있어 생생했다. 예를 들면, 아트북페어에 참가하는 해외팀이 책을 선정할 때부터의 고민부터, 짐을 싸고, 디스플레이를 하고, 남은 책을 가져오게 되는 상황까지 총체적으로 고민 해야하는 상황 같은 것. 페어 개최국의 예술이나 출판의 흐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여행 가방에 한정된 물량만을 가져온 불리한 입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본인들의 서점이나 행사를 홍보하고, 무려 판매도 하면서, 해외 출판계의 동향까지 파악할 좋은 기회라고 해도, 이 불리함을 극복하며 활동을 해나가는 이들에게 일종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었다. 






내 개인적인 리서치 일정을 일본의 지인들에게 알렸더니, 2017년 도쿄아트북페어장에서는 <아트 브리지>에 꼭 들러 달라는 연락이 왔다. 에가미 켄이치로라는 동아시아 지역 리서처의 제안이었다. 아트 브리지는 브리지 스토리라는 기획으로 웹진도 운영하고, 오프라인 매거진도 발행하는 국제적인 연대였다. 내가 제주에서 발행하는 <씨위드>라는 네트워킹 기반의 잡지발행과 맥락도 활동도 매우 유사해서 신기하고 놀라웠다. 참여자도 내용도 다르지만, 장르도 스타일도 상관없이, 각자의 지역에서 다양한 필자들이 본인의 관심 분야에 대해 적는다는 점이 똑같아서 일본의 쌍둥이 형제를 찾은 기분까지 들었다. 아트 브리지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 ‘브리지 스토리’는 자신의 관점과 네트워크 활동을 계속하는 6명의 글을 모은다. 장르도 스타일도 그리고 발신되는 장소도 다르지만, 각각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왕래하고 알리면서 동시대의 시각을 공유하려는 노력이다. 그 중에서  '말의 다리’라는 연재는 2017 년 3 월까지 매월 30 일에 3 명씩 업데이트 해 나간 프로젝트로, 에가미 켄이치로도 이 연재에 필진으로 참여해, 한국이나 동아시아 다양한 지역의 공간만들기에 대한 관심을 글로 풀고 있었다. <아트 브리지> 부스를 지키고 있던 이에게 켄이치로의 소개로 찾아왔음을 말하고, 제주에서부터 가져간 <씨위드> 영문판과 한글판을 공간에 비치해달라고 전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아트 브리지의 잡지 두 권을 똑같이 받아들고 오게 됐고, 향후 서로 나오는 잡지를 교환하자며 주소도 주게 받게 됐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지만 예술과 책을 매개로 비슷한 활동을 하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런 페어가 가진 가장 긍정적인 효과임은 말할 것도 없다. 


도쿄아트북페어와 함께, 출판으로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와중에 가장 열심히 찾아보고 경험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곳은 츠타야 타이칸야마, 츠타야 긴자 6, 츠타야 시부야 등이었다. 책과 큐레이션으로 라이프스타일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을 듣는 츠타야의 저력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책과 관련한 편하고 일하고 싶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한 곳이 타이칸야마점이였고, 긴자 6는 좀 더 고급스런 느낌을 연출하는 데 주력한 느낌, 시부야는 도시 속의 작은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쉼터 같은 느낌이었다. 도시와 공간의 특성에 맞게 전혀 다른 모양을 가진 점이 눈에 띄는 점이었다. 츠타야라는 브랜드를 이용해 인테리어나 디스플레이를 통일시키는 구석 없이, 구석구석 새롭게 매우 공을 들여 공간을 만들어나간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프랜차이즈의 실용성과 확장성은 츠타야에선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다이칸야마가 내세우는 바에서는 예술이나 패션잡지의 과월호를 모두 모아 전시하고 사이사이 유명작가의 작품이나 고서를 판매가와 함께 전시해뒀다. 음식과 술, 예술작품과 책, 역사와 음악이 함께 하는 아늑한 공간에선 두 세시간이 눈 깜짝할 새 흐르는 건 예사다. 예술이나 사진 서적이 있는 곳에 사진작품 에디션을 팔기도 하고, 커피나 차의 단행본을 파는 구역에 다시 커피와 커피용품, 차를 디스플레이하는 츠타야의 큐레이션은 이제 흔하게 보일 정도로 보편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타야만의 강점은, 그 큐레이션의 신중함과 정성을 보여준다는 점일 테다. 





프린티드 매더의 경우 

자본에서부터 독립된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아트씬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에서나 있었다. 궁리하는 바가 모두 비슷해서, 인디 전시공간과 함께 독립출판, 독립서점의 태동도 함께 했다. ‘프린티드 매더(printed matter)’는 1976년, 실험정신이 팽배했던 시절, 맨해튼 남쪽의 트라이베카 지역에서 대안예술공간으로 처음 설립됐다. 당시 창립멤버는 미술사학자 루시드 리파드(Lucid Lippard), 개념미술가 솔 르윗(Sol Lewitt), 칼 안드레(Carl Andre) 세 명이었다. 알다시피 루시드 리파드는 독보적인 미술이론가로서 그 명성이 높고, 솔 르윗과 칼 안드레는 개념미술을 다룰 때 빠질 수 없는 아티스트로 미술사에 남았다. 천재적인, 아니 전설이 된 인물들이 기념비가 될만한 프로젝트를 40여 년 전에 시작, 그 역사가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린티드 매더가 처음 생길 때의 컨셉은 당시로서는 획기적 일이었다. 텍스트나 책을 작품 자체로 간주해 아카이브하고 전시하며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꾸린 것이다. 프린티드 메더는 소호에 위치했을 때에는 쇼윈도 공간인 PM갤러리를 작가들의 전시를 위해 내어주곤 했다. 70년대부터 제니 홀저나 바바라 크루거같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개념미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했다. 책과 작품, 텍스트와 이미지의 경계가 진작부터 없는 창의적인 공간이었다. 첼시로 자리를 옮긴 지금에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어서, 쇼윈도가 매달 흥미로운 디스플레이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에 와서 짚어봐도 프린티드 매더의 운영방식은 여전히 전위적이지만, 아직까지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획기적이다. 창립으로부터 2년 뒤인 1978년에 독립적 비영리 단체로 전환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1989년엔 소호로 공간을 옮겨 12년간 서점 겸 전시 공간을 통해 예술가가 만든 출판물을 홍보하는 역할을 했다. 뉴욕의 갤러리들이 옮겨가는 추세에 힘을 얻어 2001년에 지금의 첼시 자리로 옮겼고, 이제 이 공간에서도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꾸준히 같은 활동을 하는 중이다. 지난 2012년 뉴욕을 덮쳤던 허리케인 샌디의 여파로 첼시의 수많은 갤러리가 손해를 입었다. 그중에 상대적으로 영세한 프린티드 매더도 큰 피해자 목록에 속했다. 이 공간에서 가치를 가지는 대부분이 종이를 기반으로 한 것들인데, 이들이 젖거나 찢어지게 되면서 완전히 재생 불가의 파괴가 이뤄진 것이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떠오른 지점이기도 했지만, 소수 수량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대부분 핸드메이드로 제작한 아티스트북의 특성 상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 프린티드 매더는 1980년대 말부터 온라인 아카이브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프린티드 매더의 활동을 좀 더 파고들어가 보자. 프린티드 매더는 서점과 갤러리의 중간자 노릇을 하며 예술가가 만든 출판물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는 게 주 업무다. 매년 예술서적 관련 가장 큰 규모의 행사인 뉴욕 아트북 페어를 주최하는 것도 이 기관이 해내는 역할이다. 프린티드 매더는 2006년부터 시작한 뉴욕 아트 북 페어를 전 세계 20개국에서 300여개의 출판사가 참여하는 국제적인 대형행사로 키워냈다. 이 페어는 뉴욕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2013년엔 엘에이 아트 북페어로까지 확장되기도 했다. 서점 같아 보이는 공간에선 이런저런 아티스트북은 물론이고 작가들의 에디션이 매겨진 프린트 작품들을 판매해 수익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프린티는 매더는 정부와 기업, 개인들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비영리 기업으로서 학생과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신진작가의 그림이나 굿즈, 에디션을 볼 수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오노 요코 같은 거장 작가의 책이나 프린트까지 거래하기 때문에, 아카이브를 넘어 수익을 창출하는 범위도 장르와 작가불문 꽤 방대하다. 이들 작품으로 수시로 서점의 디스플레이를 바꾸며 전시 공간으로 훌륭히 기능하고 있기에, 이 특이한 서점엔 늘 손님이자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예술관련 출판물을 취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카이브 기능도 자처하게 됐다. 예술가들이 만든 출판물이나 인쇄물 소장품이 1만 5천여 권에 달한다. 그중 5천여 권은 외국에서 들여왔다니 마음먹고 아티스트 북 아카이브 작업에 달려든 셈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랜 역사로 예술가들이 만든 인쇄물을 미국에서, 그중에서도 예술의 중심지라는 뉴욕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판매하고 있는 곳이 됐다.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하지만, 예술가들이 만들었다고 아무것이나 팔지는 않는다. 예술가들의 자료를 받는 곳인 만큼 일종의 큐레이션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를테면 심사위원회가 있어 정해진 절차를 밟은 뒤에 책을 입고하고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을 통해 판매한다. 판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존의 서점에서 환대받지 못하던 아티스트북의 안식처가 마련된 셈이고, 무려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적 같은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서점 자체의 수익구조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간의 활동과 역사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안정적인 기금 구조를 마련해 비영리 기업으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자유롭게 운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유 안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 예술가들과 예술책들에게 아지트 노릇을 해주는 것이다. 역사가 된 지금에도 프린티는 매더는 모두에게 열린 기회를 제공하며 개인 예술가든 독립출판사든 프린티드 매더에 접근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테이트라는 브랜드를 통과한 책들 

런던에서는 독립출판이라기보다는 기관에서 운영하는 아트북들이 명성을 얻고 역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 테이트(TATE)는 영국에 1897년 헨리 테이트 경이 테이트 갤러리를 설립한 이후로 120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어가면서 현재 테이트 브리튼, 모던, 리버풀, 세인트아이브스까지 총 4곳에 공간을 둔 국립미술관이다. 전시 성격에 따라 컬렉션을 배분해 전시하고 기획전 등을 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상설전으로 무료로 대중에게 개방되고, 기획전만 입장료를 받는 운영 방식으로 대부분의 영국 국공립미술과 방침을 같이 한다. 하지만, 점점 빅토리아 & 알버트 뮤지엄이나 내셔널 갤러리 같은 다른 국립 기관과 정부로부터의 지원금 예산 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테이트 자체의 운영을 위한 국가 예산과는 별도의 펀드레이징을 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고, 수익을 내기 위해 테이트 자체의 케이터링(음식과 커피 등을 자체 시스템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둔다. 출판 역시 케이터링처럼 수익을 발생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된다. 전시와 컬렉션을 기록하는 역할과 더불어 하나의 사업으로 간주하며 출판팀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6일, 테이트브리튼 미술관 옆에 위치한 출판팀 사무실에서 대부분 학자와 리서처로 구성된 출판팀과 그 시스템에 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퍼블리싱 비즈니스 디렉터인 존 스타치비츠(John Stachiewicz), 인터네셔널 저작권 매니저인 한나 로빈슨(Hannah Robinson), 프로덕션 매니저 빌 존스(Bill Jones)에게서 테이트 출판팀의 특수한 기획과 제작, 배포, 협력에 이르기까지 프로세스 대부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테이트가 끌고 가는 주요한 부분인 미술관에 속한 출판팀으로서의 미술 출판이라는 기본적인 콘셉트는 타 출판사와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미팅을 통해 정리한 테이트만이 내세우는 몇 가지 특징적인 강점은 크게 3가지다. 하나, 프로덕션 매니저의 존재와 출판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정도. 둘, 미술관 이름을 건 잡지 발행. 셋, 테이트라는 미술관 서점을 통한 유리한 판매거점이다.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 이야기 속에는 다시 테이트 출판팀의 운영 방식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이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출판팀 스텝 구조와 프로덕션 매니저의 존재

테이트 출판팀은 디렉터 존 스타치비츠를 중심으로 총 20명의 스태프와 함께 1년에 50권에서 55권의 책을 발행한다. 편집팀에서는 에디토리얼 매니저 제인 에이스(Jane Ace) 밑으로 프로젝트 에디터 엘리스 차세이(Alice Chasey), 주디스 세 번(Judith Severne), 니콜라 비온(Nicola Bion), 엠마 폴터(Emma Poulter), 에디토리얼 어시스턴트 에밀리아 윌(Emilia Will)까지 6명이 일한다. 제키 클레인(Jacky Klein)은 커미션 편집위원, 홀리 통스(Holly Tonks)는 어린이 책 커미션 에디터로 일한다. 발행하는 책 중 전시와 관련한 책, 즉 전시 도록은 20여 권, 예술과 관련한 책들이 15~20권, 어린이용 책이 15권 정도로 총 50여 권에 가까운 책들을 출간하게 된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테이트 출판팀의 시작은 전시 도록이었다. 전시 도록을 만드는 데는 보통 18개월에서 2년의 세월이 걸린다. 물론 이 기간은 마감 때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전시 직전에 도록이 나오려면 언제나 시간이 촉박하기 마련이다. 출판팀 내부에 디자이너를 따로 두진 않고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해 두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와 함께 일한다. 도록이나 책의 성격에 따라 그때그때 프리랜서와 계약하고 책을 만든다. 판매와 홍보를 맡은 팀에는 매니저인 맥스 룬디(Maxx Lundie)와 고객 서비스보조인 엘리 로빈슨(Ellie Robinson), 판매와 출판 관리인인 카리스 프랭크랜드(Carys Frankland), 4일 출근하는 트레이드 판매 관리인인 로렌스 윌리암스(Lawrence Willams), 마케팅과 홍보 코디네이터인 루시 맥도날드(LucyMacDonald)가 일한다. 이밖에 국제 판권 매니저인 한나 로빈슨(Hannah Robinson)이 있다.  


지금까지 테이트에서 출판한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뽑자면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프리-라파엘학파의 책이다. 이것은 테이트에서 만들기 좋은 책이었다. 일단 프리-라파엘학파 그림의 저작권은 다른 책에 비하면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었고, 테이트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수도 많았다. 두 번째는 미팅한 날 하루 전에 출간된, 곧 테이트 브리튼에서 전시를 오픈할 예정이던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도록이다. 기획전이나 회고전을 하는 작가의 경우, 전시에 출품된 작품의 경우에 한해 저작권이 유연한 사례가 많고, 저작권 비용도 감면해 주는 경우가 많아, 전시 자체가 다시 출판에 유리한 부분이 된다. 그러한 면에서 화이트리드의 도록은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전시 도록이다. 가장 높은 저작료를 지급한 도록이지만, 가장 많이 팔리고 이슈를 끌면서 출판팀에 경제적 도움을 준 것도 호크니의 도록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네 번째는 영국 작가 시리즈(British Artist Series)이다.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모든 일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던지는 질문인 “갤러리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미술관에서 기획해 미술관에서 판매한 책은 90%의 이익을 내고, 외부 출판사의 책을 입점해 판매하면 15%의 이익을 거둔다. 수익도 덜하지만, 경쟁도 덜해, 트레이딩 북의 입점도 활발히 하는 편이다. 『Radical Eyes』의 경우 제작 기간만 18개월이 걸렸다. 이 책의 경우 미국 에디션도 별도로 가지고 있어서, 국제적으로 판매한다. 인터내셔널 판매의 경우는 최소 3,000부를 제작한다. 순회전의 도록을 만들 경우에도, 그 지역 미술관에서 고유의 출판을 하기도 한다. 만약 그 지역의 언어로 번역이 필요할 경우, 번역 진행도 그곳의 출판팀이 직접 하게 된다. 인상주의 전시의 경우, 원래는 프랑스어로 쓰인 텍스트들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프로덕션 팀의 활약

프로덕션 매니저인 빌 존스가 이끄는 프로덕션 팀에는 부프로덕션 매니저인 로안 마너(Roanne Marner),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줄리엣 듀피어(Juliette Dupire), 그림 리서처인 엠마 오닐(Emma O’Neill)까지 3명이 있다. 파트타임으로 그림 리서처인 로즈 영(Roz Young)과 자택근무자인 데보라 메더렐(Deborah Metherell)까지 두 명이 더 있다. 프로덕션 팀이 하는 일은 아마 한국에서 디자이너나 에디터가 하는 일에서 아트북에 특화돼 더욱 전문화돼 있다. 이 팀은 모든 이미지를 모아, 출판에 적합한지 정확하게 검수하고, 책으로 만들어낸다. 미술 출판물이다 보니 인쇄되는 작품의 색 조정을 하고, 분명한 색이 나오도록 고화질로 스캔을 받는 등, 도록을 만드는 데 있어 이미지와 관련한 모든 것들을 꼼꼼히 챙기는 것이 프로덕션 팀의 중요 업무다. 전시의 최초 관객으로서 작품을 보고 도록과의 색을 체크하고, 인쇄될 때와의 색 차이를 비교한다. 색을 매치시키는 게 매우 중요한 과정인 것이다. 완성의 정도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원본에 가까운 색감으로 완벽에 가깝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라이트박스 등으로 질 조절을 열심히 하고, 큰 전시의 경우에는 직접 인쇄소에 가서 감리를 본다. 도록을 만들기 위한 종이와 디자인 등을 출판팀의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대부분 프로젝트는 5년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된다. 긴 시간을 두고 양질의 도록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테이트는 테이트 고유의 폰트가 있을 정도로 디자인에 관심과 투자를 많이 하지만, 책의 성격과 디자이너에 따라 폰트를 사용한다. 꼭 테이트 폰트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테이트 모던 하이라이트』 같은 책의 경우, 테이트 폰트를 사용했다. 디자인 비용은 경우마다 다른데, 책의 복잡성이나 디자이너의 경력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 결정한다. 


빌 존스의 입을 빌려 들은 프로덕션 팀의 활동에 대해 듣는 일은 구체적인 내용이 많아 흥미로웠다. 존스에 따르면 프로덕션 팀에서 프로덕션 매니저는 도록을 위한 종이를 정하는 데서부터, 디자이너와 소통하고, 색의 정확도와 책의 완성도를 고심하는 등 책을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처럼 예민하게 작업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어린이 책에는 코팅하지 않은 크리미한 종이를 쓴다든지, 작품에 따라 아이보리색이 가미된 종이를 선택하는 등, 결정을 위한 수많은 논의가 프로덕션 매니저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큐레이터와 디자이너가 직접 소통하는 과정의 중간에 프로덕션 매니저가 있음으로써, 전문가적 경험과 식견, 검토가 더해지고, 테이트의 도록들은 그 과정을 통해 완성도 높은 출판물들을 안심하고 발행해낼 수 있는 구조였다.   


미술관에서의 잡지 발행

규모가 큰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자체의 전시 소식을 소화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광고 등 다양한 부가 수입을 위해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곤 한다. 테이트도 정기간행물을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테이트에서 잡지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었을 때, 디렉터인 스타치비츠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리고 당연하게도 마케팅의 편의를 위해 발행한다고 전했다. 일 년에 세 차례, 1월, 5월, 9월에 기본적으로는 테이트의 멤버십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발송할 용도로 발행된다. 테이트 멤버십이 제공하는 혜택들은 테이트의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것, 멤버스룸에 들어갈 수 있는 것, 멤버들을 위한 특별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 등이 있다. 이는 테이트 멤버십의 다양한 혜택 중에 잡지를 받는 요소를 도입해, 테이트의 회원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예술인 커뮤니티를 확장하기 위한 시도였다. 테이트 멤버십에 가입한 회원들 중 58%가 영국이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이다. 이들 회원과 지속해서 소통하는 방식으로서 시작된 잡지 발행은 매우 실용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광고 이익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잡지 출판은 전시 콘텐츠와 홍보에 관련이 있어서, 출판팀이 아닌 전시 기획팀에서 따로 콘텐츠를 만들어, 잡지 외주 업체에 제작을 의뢰하고 있다. 엄연히 말하면, 테이트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잡지이긴 하지만, 테이트 출판팀의 업무는 아닌 셈이다. 당연히 유통도 아웃소싱을 한다. 3년 계약을 두고, 외주 업체에서 잡지 발행을 전임한다.  


예술 책 시장에서 테이트는 장소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테이트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찾아가 보고 싶은 명화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보기 위해 찾은 관객들을 기본적으로 확보한 뒤에, 그 콘텐츠로 만든 도록을 판다. 테이트라는 브랜드 자체가 굉장한 메리트다. 이는 템즈 & 허드슨이나 타센 같은 대형출판사는 절대 가지지 못한 부분이다. 그래서 테이트는 보통의 대형출판사들이 충실히 따르는 전략인 대량생산해 대량 유통하는 구조에 반하는 전략을 짠다. 양질의 출판물을 소량으로 제작해 특정한 장소(즉 테이트)에서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테이트에서 발행하는 도록이나 책자들은 초판이 1,500부에서 2,000부 정도로 많지 않다. 장소에서 경쟁했을 때, 테이트 서점에 파는 출판물 중 가장 거래가 잘 되는 것은 다시 테이트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나 전시 도록일 것이다. 다른 어떤 출판사도 가지지 못한 이 장소적, 브랜드적 경쟁력, 이 부분을 말하는 데 있어 스타치피츠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테이트에서는 출판을 위해 따로 펀드레이징을 하지 않는다. 출판은 사치가 아니고, 돈을 벌기는 어려운 구조의 사업이다. 하지만, 테이트라는 미술관과 그 콘텐츠의 효과적인 전달과 홍보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다시 영국 작가 시리즈를 제작해야 했던 이유는 테이트 브리튼의 컬렉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시 이 컬렉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리즈물이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서점에서 주력으로 판매할 수 있는 출판물이 되는 식이다. 서로 서로 긴밀히 연결된 탄탄한 콘텐츠 비즈니스가 테이트라는 브랜드 안에서 맞물려 돌아간다.  





연재를 마치며

세계적인 미술출판의 추이를 볼 수 있는 예를 도쿄의 아트북페어와 뉴욕의 프린티드 매더, 런던의 테이트 출판을 들어 설명했다. 기존에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를 해 둔 자료들을 모으고 편집해 하나의 글로 엮어봤다. 많은 사례를 취재하고 살피면서 이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막연히 생각만 하던 차에, 글로벌 대형행사와 미술계 프랜차이즈들, 그리고 지역에서의 자생 가능한 대안으로서의 미술출판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풀 수 있어 흥미로운 사유와 정리의 시간이었다. 어쩌면 광대하고 큰 이야기 같았던 논의가 하나씩 페이지를 글로 채워나가며 저절로 정리되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요소는 부분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게 맞다. 자생적인 대안으로 시작한 미술출판이 있고, 기관에서 필요에 의해 시작된 미술출판이 있으며 이들을 유통하는 창구로 북페어가 열리고 서점이 생기는데, 이들을 찾는 관객들은 고정적이기보다는 유연하게 이곳저곳을 넘나들 수 있다. 대형행사나 소규모 지역행사의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자생적인 지역행사는 규모 있는 국제적 행사의 흐름을 따를 수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그 행사를 의식하며 활동을 이어간다. 역시 지역행사를 찾는 관객이 국제적 대형행사의 관객과 구분될 필요는 없다. 어떤 미래를 전망하고 현장을 비판하기 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한번 짚어본 것에 이 연재의 의의를 두는 것이 맞겠다.


1 독립출판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1인창작자라는 점에서 이 글 에선 아트북과 독립출판을 대체로 비슷한 개념으로 쓰고 있다.








필자: 이나연 quelpartpress@gmail.com

82년생 이나연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성인기의 대부분은 서울과 뉴욕에서 보냈다. 전공은 회화와 미술평론. 2015년, 제주에서 글로벌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퀠파트프레스를 차려 <뉴욕지금미술>과 <뉴욕생활예술유람기>를 발행했다. 2017년 한영판으로 별도 발행되는 문화예술신문 <씨위드>를 창간했다.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고, 강연을 한다.


이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2018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






이나연 필자 -달진닷컴 매체


① 현대미술계에서 국제적 대형행사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② 글로벌 프랜차이즈 미술관, 아트페어, 갤러리

③ 출판과 미술, 그리고 지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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