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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전시의 한 방, 한 눈, 오늘_일민미술관의 ‘엉망’

현시원

이렇게 한눈에 들어오는 전시가 있을까? 광화문 사거리에 걸린 전시 현수막한 방으로 화제를 모았던 ‘엉망’ 전(2018.9.7-11.25) 말이다. 네 살 한글을 아는 아이조차 ‘엉망’ 현수막이 사라지자 도대체 ‘엉망이 어디 갔냐’며 탄식했다. 나는‘ 엉망’이 사라진 거리에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이 여전히 있는 둔탁한 물질감에 ‘동상도 죽는다’는 크리스 마케의 영화를 떠올렸지만 역시나 전시는 끝나고 광화문 거리는 그대로였다. 교보문고 건물 외벽에서 너무도 착하게 세상을 어루만져주는, 계절과 대화하는 안녕 풍의 인사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엉망’ 전은 맞다. 2018년 11월 24일 전시 협업자 토크에서 일민미술관 허미석 큐레이터가 전시에 참여하며 임했다는 자세, “못된 어린이 같은 마음”을 잠시간 잊지 않게 하는 전시였다. 2018년 서울이 어디고 뭐 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지, 전시의 시스템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1층부터 3층까지 각기 다른 기획과 프로세스는 어떤 ‘힘’에 추동력을 얻는지 등등.




‘엉망’ 전시장 1층 전경, 제공 일민미술관


Sasa[44] 작가의 이름은 전시 현수막에 없었다. 전시는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 구조물의 연속체를 보여주는 형국을 만들어냈다. 작가 개인의 아카이빙 시스템과 풍수지리와 지시문을 따르는 이성적 수행의 세계관, 그리고 인공품의 세계에서 인간-수집기계가 되어 낱장들을 거대한 사전처럼 만들어내는 집념들을 보게 하는 전시였다. ‘엉망’ 전과 관련해 ‘젊은이들이 세태를 반영하는 ‘엉망’에 격하게 공감한다’는 일간지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 미술이 아닌 ‘살아있는 것’ ‘도시’ ‘힙’에 관심 있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전시장에서 자기 업무를 보며 전시를 ‘체크’했다. 일민미술관 건물 외벽에 붙은 거대한 ‘엉망’의 무덤덤한 서체부터 전시장 곳곳의 광경은 수많은 관객들의 스마트폰 사진에 담겨 인스타그램 등의 온라인에 또 다르게 현시되었다. 블록 버스터 전시가 아닌 이상 ‘화제’가 되었다는 말은 살아있는 작가와 큐레이터, 전시제도가 만들어낸 현대미술 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희한한 광경을 만들어낸 ‘엉망’전은 ‘망했다’는 형용사가 현재진행형의 동사가 된 오늘날과 어딘가 딱 들어맞는 전시였기 때문이었다.


일민미술관에 붙은 전시 현수막, 슬기와 민 디자인,
제공: 일민미술관 촬영: 김상태


또 그렇지 않기도 했다. ‘엉망’이라는 흑백의 현수막은 사람들의 허한 것만 같은 마음에 훅하고 들어왔지만 전시장에는 살아있는 많은 사람의 협업이 다른 시간대를 통과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전시를 보는 길을 찾는 일은 좁고 예민했다. 그러니까 한눈에 한 손에 잡힐 듯 광화문 앞 사람들의 시선을 끌던 ‘엉망’은 절대 한 손에 들어올 수 없는 여러 조각난 순간들의 집적으로 이뤄진 거대한 개인전-구조물이었다. 전시가 끝나기 하루 전날인 2018년 11월 24일에는 ‘협업자 토크’라는 이름으로 일민미술관 학예연구팀과 작가 김동희, 박다함이 함께 했는데 사회를 본 나는 작가 Sasa[44]의 시스템 안에서 제각각 ‘우연’을 발견하는 협업자 개인들의 시각을 볼 수 있었다. 2층 기획과 설치를 맡았던 김동희는 조명이 44개로 딱 떨어져서 무서웠다고 했다. 3층 우리 동네(Our Spot)’를 진행한 일민미술관 학예연구팀은 각자가 만났던 인물, 사물, 시스템을 완벽하게 수장고에 던져버릴 수 없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만난 우연에 대해 들려주었다.

전시에 대한 생각을 나누다 보면 허공에 바퀴를 달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미 끝난 전시에 대한 책을 같이 읽으면 이 수많은 경험담 속에서 어떤 방법론과 이론을 꾹 눌러 건져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수영장에서 발차기를 빵 하고 그 탄성을 받아 다시 반 바퀴를 달린다는 어떤 이론가의 능동적인 자세처럼, 전시 또한 그런 것일까? 국가미술전람회부터 아트페어, 공룡의 화석을 전시한 전시장에 이르기까지 ‘전시’라는 것은 누군가의 눈을 사로잡는다. 전시장 바깥을 나갈 때면 다른 사람이 되어있기를 기대하는 사실상 훈육의 논리에 의해 구축된다. 그러나 배치를 다르게 할 수 있다. ‘엉망’이 외벽과 뼈대, 그 안의 소화된 내용물이 정반대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 현시원(1980- ) ‘A Snowflake’(국제갤러리, 2017) 등 전시와 프로젝트 기획. 『 사물 유람』(현실문화, 2014),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고 글쓰기』(미디어버스, 2017), 『1:1 다이어그램』(워크룸, 2018)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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