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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계의 기억투쟁을 촉구함

최열

대한민국 어느 국공립미술관에서도 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을 ‘기억하는’ 교육, 전시 일정은 없다. 쓸쓸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관심한 것이다. 단 한 곳이 있는데 미술관이 아니라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다. 서예박물관의 전시 제목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서화특별전, 자화상-나를 보다’이다.

3.1민족해방운동은 국민국가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이었고 그 처절한 희생으로 얻은 것은 너무도 많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9년 3월 1일 드디어 투쟁 100주년을 맞이했다. 미술계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껏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존재하도록 희생과 헌신을 다 해 온 미술에 대해 이토록 차가운 눈길을 보내는 무슨 연유일까.

국공립미술관이 이처럼 공동체의 운명에 무관심한 까닭은 관장과 학예사 전반에 퍼진 역사의식의 부재와 근현대미술사에 대한 인식부재에 있다. 지난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후 50년 동안 수집한 미술품을 보면 ‘한국화, 서예’ 분야는 이른바 ‘회화, 조각, 뉴미디어’ 분야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전시 횟수를 계산해 보면 아마도 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명이식


국민국가의 세금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미술관을 국공립 미술관이라고 한다. 국공립미술관은 국민국가 공동체의 운명과 하나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엔 공동체와 운명을 함께하는 미술관이란 없었다. 해방 이후 자주 국가를 건설한 이후에도 무려 20년 동안 공동체는 국립미술관을 가질 수 없었지만 빈곤의 세월을 견딘 이후 국민의 세금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을 설립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주인은 관장이나 학예사가 아니다.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공동체 구성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 수집과 전시, 교육은 그 공동체의 역사와 이상에 헌신하는 것이어야 한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국공립미술관이 부재할 수밖에 없던 저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구 반대편으로 가지 않더라도 제국을 경험한 이웃 중국, 일본의 국공립미술관이 자기 공동체의 정체성과 그 미래를 중심에 두고 있음에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때마침 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한국근대미술사학을 전공한 학자 윤범모 관장이 취임했다. 이를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껏 방치해 온 공동체의 이상을 기조로 하는 미술관의 장엄한 역사를 다시 써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 지금, 100주년을 맞이한 2019년, 미술관만이 아니라 미술계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먼저 ‘반제투쟁과 민족해방’에 헌신한 미술과 미술가를 발굴하고 수집하여 그들의 투쟁을 추모하는 기억투쟁을 할 일이다. 고종 시대에서 일제강점기 그리고 나아가 독재정권에 이르는 150년 동안 침략 제국과 군부독재에 저항한 미술과 미술가를 배척해 온 국립현대미술관과 미술계의 참담한 과거를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저항미술을 찾아 존숭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윤용구, <추속죽(帚束竹), 월영죽엽(月影竹葉)>, <도수죽(倒垂竹), 춘뢰일야(春雷一夜)>, <괴석, 송지우인(宋之愚人)>, <반지죽(斑指竹) 노대생손(老大生孫)>, 종이, 각각 131×32cm, 최열 소장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연재한 <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 맞이 지사화가열전>이 그 기억투쟁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미술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외면해 온 일을 내가 감당할 의무는 없지만 3.1민족해방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한 사람이라도 지사화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 숭고한 이상과 희생을 치른 역사에 너무 미안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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