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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왜곡·도착·변태

김병수

“철학은 불평불만분자들이 하는거야!” 아파트 근처 자주 가는 중국음식점에서 들은 말이다. 그는 한국에서 유명한 자동차 공장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선배로서의 조언이라면서 말을 이어가는 그에게 오해라고 설명하려다 그만두었다. 비슷한 사례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보들레르의 시에서 알바트로스는 하늘을 멋지게 나는데 바로 그 날개 때문에 착륙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선원들에게 조롱을 당한다. 오래전에 읽은 책에서 철학자의 모습으로 비유되는 장면이었다. 우아한 이상과 신산한 현실에 대한 대조일 것이다.



허승범, 06, 우주 시리즈, 잉크젯 프린트, 184×110cm

미국 미학회 회장을 지내고 『옥스퍼드 미학 핸드북』이라는 두툼한 책을 편집한 제럴드 레빈슨 교수는 한 대담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 예술을 포함할 능력을 지녔음에도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한다면 내 견해로는 도착적이라고 설명하죠.” 그러나 그는 이어서 도착과 변태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나는 삶에서 예술 감상을 포함하는 데 실패했다고 변태라는 것이 아니라 상식 밖이고 자멸적이라는 의미에서 도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예술과 포르노그래피』를 편집하기도 한다.

삶 속에서 설명되지 못하는 것은 무시되거나 배척될 수 있다. 또한 삶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이 왜곡되는 경우도 있다. ‘순결·납치·강간’이라는 내러티브는 너무 강력해서 다른 세부적인 사항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술적 형상화와 미학적 전유의 문제에서 다시 삶에서 진실과 사실이라는 문제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둘은 이미 허구적이다. 그래서 미셸 푸코는 “모든 사회는 고유한 진실의 질서, 고유한 진실의 ‘보편적 정치’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떤 설명도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진정성에 대한 강요는 지속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폭력으로 작동하게 된다. 오히려 개연성이야말로 망각된 새로운 설명 방식일 수 있다. 사유에서 일종의 분쟁 지역을 선포하는 것과 비슷하다. 조화는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다. 대위법적 방식은 독립적이고 복합적이기는 하지만 그 지향은 대단원일 뿐이다. 현실과의 관계에서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화해는 분쟁적 이해를 감당할 때 가능하다.



허승범, 10, 우주 시리즈, 잉크젯 프린트, 195×110cm

다툼을 뜻하는 분쟁이 어떻게 이해일 수 있을까? 중재는 분쟁의 중지이기보다는 대개 그 불씨가 된다. 적극적이고 맥락적인 이해로서 분쟁적 사유가 요청되는 이유이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설명에 따르면, “소송과 달리, 분쟁은 양측의 주장에 적용될 만한 규칙이 결여된 관계로서, 해결될 수 없는 적어도 두 당사자 사이의 갈등을 일컫는 경우일 것이다. 한쪽이 정당성을 갖는다고 해서 다른 쪽에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분쟁을 수습하고자 마치 소송처럼 양측에 단 하나의 판단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이들 가운데 적어도 한 쪽에 부정을 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분쟁적 사유가 어설픈 중도로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하나의 콘텍스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술작품 안에서는 복수의 콘텍스트가 갈등하고 있다. 그 갈등은 다양한 층위에 걸쳐져 있는데 현실과의 관계도 아주 중요하다. 미학적 원리가 미메시스에서 데이터베이스로 이동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지고 보면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겪고 있는 혼돈과 불안,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불투명함 등도 예술뿐만 아니라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포괄적인 특징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급격한 시대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전진하는 세계가 있으니, 그것은 날로 혁신을 거듭하는 테크놀로지이다. 이 이름의 세계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지난여름 비평에 대한 한 강연에서 “변화하는 현실과 작품들에 대한 비평의 언어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학제간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리사이클링이었다. 순수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언어를 익혀 번역을 하자는 것이며 또한 지속적인 재활용을 제안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둘 다 왜곡과 도착 그리고 변태라는 분쟁지역에 놓여있다.


김병수(1963- )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박사수료. 제17회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 부문 대상 수상. 『미술의 집은 어디인가』 등 지음. 현재 목원대 대학원 기독교미술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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