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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③ 시장친화적인 현대미술의 선전과 미술 개념의 변화

반이정

2019 ③

시장친화적인 현대미술의 선전과 미술 개념의 변화



반이정 미술평론가 


미술 공모전에 심사를 반복해서 참여하면서 전에는 의식하진 못했으나 응모작들의 양상이 이전 공모전과는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흔히 다매체를 사용하는 실험 작품의 향연이게 마련인 동시대 미술 공모전에서, 차츰 평면회화 작업의 수가 압도하기 시작했고 최종 후보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서울아트가이드 온라인에 기고한 3회의 연재물 중에 1회 연재로 쓴 원고 <‘새로운 회화’: 회화 위기론에서 비롯된>의 도입부를 나는 다음처럼 시작했다.  


“그렇지만 정확히 연도를 확정짓긴 어려워도 대략 2010년 전후 어느 무렵부터, 주요 미술공모전에 후보자와 수상자의 명단에 평면 회화 작가들이 오르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이 같은 회화 강세는 일시적인 복고 취향으로 해석하긴 어렵다. 회화의 역습은 미술의 변화, 나아가 전에 없던 새로운 회화의 출현으로 보는 편이 맞다.” 1)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은, 다매체를 동원된 지루한 실험 작품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시장친화적인 평면회화, 서사의 깊이가 낮고 장식가치를 우선시하는 복고적인 미술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가정해 본다. 



비엔날레 피로감, 실험미술의 고갈  


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을 확인시키는 초대형 격년제 미술행사다. 우리나라는 지역별로 독자적인 행사를 거느릴 만큼 비엔날레의 수가 많다. 너무 많다. 비엔날레의 개수만 많은 데서 그치지 않고, 비엔날레관에 입장하면 ‘너무 많다’의 투성이다. 작품도, 전시장도, 전시 기획자도, 그리고 벽에 붙은 작품 해설도. 비엔날레 관람을 하루 안에 완수해야 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여기저기 산재된 전시장들과 전시실마다 마주치는 편당 4-50분이 넘는 무수한 미디어 작품들과 각기 다른 7개 이상의 기획 전시들이 관람의 피로를 끌어올린다. 


비엔날레가 만드는 피로감은, ‘너무 많은’ 작품, 전시장, 기획자, 해설문 뿐 아니라, 매회 비엔날레가 내세우는 주제의 무거움에도 있다. 비엔날레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1백명 내외의 국내외 작가를 초대하는 만큼 매머드급으로 치러지며, 공공성을 앞세운 주제, 혹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취지의 주제, 나아가 세계적으로 유행한 사회과학 화두를 주제로 뽑아드는 것이 기획의 공식으로 굳었다. 2018년 광주 비엔날레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민족주의 연구서 『상상의 공동체』를 차용해 전쟁, 분단, 냉전, 포스트인터넷 등 어지간한 연결고리를 지닌 모든 주제를 전시의 큰 주제 속에 포함시켰고, 2018년 부산 비엔날레 역시 ‘분리’라는 큰 주제 아래 난민, 디아스포라(이산), 정치 갈등, 경제 갈등 등 다양한 주제를 끌어왔다. 어쩌면 비엔날레들의 다음 주제로 등판할 선수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일지도 모른다. 한 공간에 모아놓은 작품의 수가 많다보니, 그 안에 ‘상상의 경계들’나 ‘분리’가 아닌, 유명한 또 다른 사회학적 화두를 기입한들 의미가 통할 수 있고 이것이 이런 매머드 급 전시의 비상구다. 


격년마다 매회 만나는 비엔날레의 과유불급으로부터, 전시된 작품과 작품의 해설이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정 사회과학 화두에 최적화된 현대미술(가)이 있을 리가 만무하건만, 전 세계 수백 작가들을 끌어 모아 비엔날레가 정한 단 하나의 주제에 수렴시키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그러다보니 포괄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누구도 트집 잡기 어려운 선한 대의명분이나 이미 공인된 사회학적 화두가 주제로 선택된다. 비엔날레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미술이 어느덧 위대한 구호를 대변하는 매체로 둔갑해있다. 냉전, 전쟁, 분단, 소외, 이산, 인종문제, 젠더 등등 절박한 사회문제를 관철하는 진지한 대변인으로 변신해 있다. 믿겨지지 않는 일이다.


나는 2016년 국내에서 개최된 미술 비엔날레들를 순회하고 총평을 쓸 일이 있었는데, 과거에 열렸던 국내 비엔날레 때 내가 기고했던 지나간 원고들을 거의 고스란히 재활용한 적이 있다. 일종이 비엔날레 읽기 매뉴얼인데, ‘담론 과잉’, ‘공동체에 대한 미술의 기여’ ‘관객참여 프로그램’이 비엔날레를 구성하는 큰 그림이라는 게 요지였다. 이런 고정된 큰 그림 앞에서 비평가가 내놓을 수 있는 새로운 해석이란 게 없다는 자조를 덧붙인 총평이었다.


비엔날레의 숨은 기능은, 비엔날레의 기획자들과 그들이 초대한 무수한 전 세계 작가들 사이의 결속과 유대를 확인하고 강화하는 플랫폼이 어쩌면 비엔날레의 숨겨진 진짜 기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진실 앞에 나 같은 전문가 그룹도 자유롭지 않다. 진실을 은연중 알되 ‘벌거벗은 임금님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비엔날레 호에 함께 승선하는 점에서.2)


매회 비엔날레 개최를 전후로 언론들이 전문가의 입을 빌어 쏟아내는, 실험성과 비전이 부족했다느니, 제1세계 비엔날레에 비해 차별성이 결여되었느니 하는 비난 기사의 본질은 기왕에 주제 고갈로 동어반복의 루프를 헤어나지 못하는 미술계의 현주소를 창백하게 ‘반복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 혹은 그 반복에 이미 관객과 미술종사자 모두가 숙달되어 있다는 점일 게다. 미술인의 입장에서 진솔히 고백하면 백 단위의 작품이 출품되는 이런 대형 기획전에서 하나의 주제로 선명하게 수렴시키는 연출력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3)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 AHAF Seoul 2019 (2019.0808_081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아트 페어의 분화: 생계와 직결된 미술이라는 대안  


미술 작가가 종류를 불문하고 어떤 아트페어에 출품한다는 소식은, 중요한 기획전이나 비엔날레 초대되었다는 소식 만큼이나 자랑거리가 되었다. 비엔날레 피로감과 자칭 실험미술이 고갈된 자리에, 미술가의 생계와 직결된 아트페어라는 대안이 부상했다. 나아가 아트페어는 이전과는 달리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  


'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축제'의 영어 약자인 아시아프ASYAAF는 미술 대학생들의 작품을 시장에 내놓는 아트페어 플랫폼으로 2008년 출범해서 2019년 현재까지 매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식품으로서의 미술에 최적화된 전시가 아트페어임을 감안하더라도, 젊은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에서조차 미술의 스토리텔링(서사) 기능이 더는 발 들일 수 없는 시대가 왔음을 느낀다. 서사를 대신해서 수요자가 원하는 장식가치에 최적화된 작품이 환영 받는 시대. 


캠퍼스 아트페어는 국내 미술대학들이 연합한 아트페어로 2019년 출범했다. 미술대학도 미대의 전공이 재학생의 생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는 거다. 


호텔아트페어AHAF: Asia Top Gallery Hotel Art Fair Seoul는 2009년 그랜드하야트서울에서 시작해서 서울의 주요 호텔을 순회하며 이어지고 있다. 여느 아트페어가 흰 벽면에 그림을 거는 데 반해, 호텔아트페어는 호텔 객실에 그림을 비치하기 때문에 미술품을 구입해서 실제로 집 실내에 걸었을 때의 조건과 부합한다는 점을 이점으로 내세웠다. 


문화재단들도 동시대 미술 종사자의 생계 방편을 고민한 기획을 내놓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전시장을 나온 미술, 예술이 넘치는 거리’를 목표로 서울 시내의 다양한 장소에서 ‘바람난 미술’ 사업을 추진했다. 작가추천제, 참여 작가의 독립된 부스 제공, 크라우드펀드를 통핸 미술 확산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5년부터 ‘작가미술장터 개설 지원’ 사업을 공모 지원했으니, 흔히 ‘작가 직거래 장터’라는 모토로 유명해진 유니온아트페어(2016~)가 그 성과 중 하나다.4)


Solo show(2018.1025~1028 해담하우스)는 재개발 직전의 폐건물을 일회적인 아트페어 전시장으로 전용한 경우다. 2017년 인사동 폐건물에서 열린 <유니온 아트페어>가 성공적인 전례가 될 것이다. 일단 신선하다. 대형 아트페어가 연달이 열리는 9월말부터 11월까지, 폐건물을 전유한 소형 아트페어 Solo Show가 10월말 프리뷰를 가졌다. 갤러리 16곳이 각각 작가 1명(팀)만 출품시킨 아트페어인데, 아트페어가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한 부스에 모아놓는 형태라면 Solo show는 출품한 갤러리들마다 단 한명의 작가만 지원하는 아트페어로, 작가 개인의 미적 성과를 선보이는 갤러리의 개인전이라는 형식을, ‘판매를 선명하게 앞세운’ 아트페어 형식으로 전용한 경우랄 수 있다. 


그들만의 잔치 비엔날레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일간지의 도판 (서울신문 2014)



미술 개념의 변화 


매체 실험에 집중한, 재료의 질감을 극대화한, 혹은 팝아트/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의 작업이 출품작 가운데 한 축을 이룰 만큼 압도적이다. 이런 현상은 미술 애호가의 일반적인 선호도와 지금 세상이 미술에 요구하는 초상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한편 평면과 입체라는 장르 구분을 무색하게 만들면서, 일상 사물과 허구적 재현 사이의 관계를 묻는 작업도 보였고, 몇 해 전부터 나의 비평적 관심을 사로잡는 포스트 인터넷 세대의 미감을 드러낸 작품, 즉 뉴미디어 세대만이 제작할 수 있는 평면 회화도 있었으며, 사진 매체의 복제 가능성을 이용해서 허구적 재현이기에 용인되는 상상력을 뽑아낸 작업도 있었다. 5)


울산 지역 독지가의 후원으로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미술 기획전 <특급 소나기 2019>의 서문으로 쓴 글의 일부다.



김환기의 미술품 경매 최고가 소식으로부터


미술품의 가치가 시장 가격과 등가라는 인식, 혹은 미술품의 가치가 시장 가격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만한 빅뉴스를 우리는 때때로 접한다.  

‘김환기의 작품이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 경신’. 2018년에 전해진 이 소식은 국내 주요 방송이 메인뉴스로 다뤘고, 김환기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로 올랐으며,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이 주제로 내게 전문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이 모두는 김환기의 그림 한 점이 85억2천996만 원(6천200만 홍콩달러)에 최종 낙찰된 5월27일 하루에 내가 보고 겪은 일이다. 미술이 현실에 소환되는 아주 드문 소동은 이처럼 작품이 시장 가격으로 평가받을 때 일어난다. 이는 미술의 생리에 일반인이 어둡다는 뜻도 되지만, 뒤집어 말하면 일반인이 미술에 기대하는 바를 투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식을 전하는 생방송 댓글 창에 시청자가 남긴 허망한 반응들 가운데 나는 두 개를 골라봤다. ‘85억? 미쳤다’ ‘나도 그리겠다’


이처럼 김환기 추상 미술을 미술사적 차별성과 독창성으로 풀이한들, 색 점으로 화면 전체를 균질하게 채운 단순한 그림 한 점의 가치가 85억원이라는 경매 결과를 설득시키진 못할 것이다. 관련 뉴스마다 허망한 심정을 댓글로 남긴 불특정 다수에겐 말이다. MBC 시사 라디오방송에서 내게 던진 가장 중요한 질문 역시 동일한 거였다. “그림 한 점이 85억이나 한다니, 이렇게 비싼 이유가 뭘까요?”


이 질문에 정답을 줄 수 있는 적임자는 누구일까? 김환기는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근대 화가그룹에 속하는 만큼, 동시대 미술을 해석하는 나 같은 현장 미술평론가와는 일단 분야부터 다르다. 그렇다고 근대 미술 전문가라 한들 ‘붉은 점화’의 우수성을 풀이하는 방편으로 반증 불가능한 미술사적 해석 이상을 내놓진 못할 것이다. 그러면 미술 시장 전문가라면 속 시원한 답을 알고 있을까? 그들 사이에서도 낙찰 가격에 대한 의견은 ‘적당했다와 지나쳤다’로 갈린다. 먼저 저 정도 고가에 매매가 이뤄진 미술품은 이미 미학과 경제학이 뒤엉킨 무엇으로 변신한 상태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는 가격을 판단할 만한 합의할 수 있는 요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배기량, 엔진 등급, 오디오, 시트 따위의 옵션의 품질 따위가 그렇다. 거기에 더해 제조사의 브랜드 가치가 가세한다. 이런 공산품의 가격 결정에 반해 예술품의 상품성은 상당 부분 작가의 브랜드 가치의 비중이 크다. 김환기 작품의 단조로운 구성을 보고 ‘나도 그리겠다’는 냉소적인 반응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요령껏 장인들을 고용해서 원작을 기계적으로 모사한들, ‘김환기’라는 브랜드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붉은 점화’의 경매 시작 가격은 77억부터 시작했음을 기억하자. 이번 경매로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는 2017년 4월 케이옥션 서울경매에서 낙찰된 김환기의 <고요 5-IV-73 #310>(1973)로 65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따라서 ‘붉은 점화’의 시작 가격은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처음부터 깰 심산으로 정해졌다 할 것이다. (정작 업계의 관심은 최초의 ‘낙찰가 기준 100억 원 돌파’였단다) 이 경매는 입찰자들에게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작품 소장’이라는 명성과 자산과 투자가치를 함께 내건 셈이다. 이는 미술사적 평가 가치나 입에 발린 찬사로는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일 게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예술의 한 속성을 ‘과시재’로 본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은 “비싸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이런 현상을 표현했다. 경매장은 인문학의 찬사와 명백한 투기 심리가 뒤엉켜 공존할 것이며, 공정가를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중독성과 흡인력을 지닌 시공간이다. 그런 이유로 그림 한 점이 85억원인 이유를 예술 언어로는 풀이할 수 없다. 만인이 공유하지 못하고 만인이 이해 못한다 한들, 어떤 이들을 위한 이 같은 해방구는 사라지지 않으며 없앨 수도 없으며 없애서도 안 된다.6)


김환기의 붉은 점화 85억2천996만 원(6천2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어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를 기록(2018년)


데미안 허스트 개인전으로부터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개막일 보다 1달 일찍 개막했으나 폐막은 며칠 늦게 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매머드 급 개인전 <난파선 ‘믿을 수 없는’호號에서 인양한 보물들 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 (2017.0409~1203 푼타 델라 도가나 + 팔라초 그라씨)은 프랑스의 백만장자 프랑수아 피노가 소유한 베니스의 대형 전시장 두 곳에 신작을 쏟아 냈다. 작품 개수가 189점에 달하고 이 가운데 작은 장신구들을 모아놓은 캐비닛만 21개나 될 만큼 작품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사업가처럼 미술을 다루는 데미안 허스트의 태도는 일개인이 온전히 감당하는 종래의 미술 개념과는 다른 차원에서 읽혀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지만, 세상의 변화와 함께 동시대 미술의 개념도 변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허스트의 개인전은 미래에 나타날 동시대 미술의 여러 조류 가운데 하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2017년 베니스 개인전을 위해 5천만 파운드(746억 원) 이상의 돈을 썼다고 BBC에서 털어놓은 허스트의 진술처럼, 이 전시는 금전적인 지원이 보장될 때 실현 가능한 미적인 상상력과 조형적 완성도의 결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2천년 동안 수심에 잠겨있던 고대 유물을 흉내 낸 작품인 만큼, 작품의 재료로 금 은 금박 마노 공작석과 갖은 색을 띤 대리석같은 값나가는 재료들이 풍족하게 사용됐다. <잘린 메두사의 머리 The severed head of Medusa>는 금과 은, 초록색 공작석, 그리고 크리스털로 제각각 제작되어 유리관에 진열되었다. 소장이 불가능한 고대 유물을 상상력과 재력을 동원해서 미술품이라는 형식으로 연출해 내놨다. 이는 어쩌면 허스트의 개인전이 열린 베니스 미술관의 소유주 프랑수아 피노가 재력으로 예술에 투자하는 태도와도 닮아있다.


난해함의 늪에 빠진 현대미술이라는 미로 안에서, 거금을 동원해서 완성한 데미안 허스트의 허구적인 드라마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장식 욕구를 과시적으로 충족시킨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의 신작은 미술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7)


데미안 허스트의 개인전 (푼타델라도가나 2017)



새로울 게 사라진 정보 과포화 시대에,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시각예술가의 딜레마가 있다. 창작, 시장, 언론, 비평이 모두 서서히 변화하는 환경에서 각 분야의 업계 종사자들은 변화된 환경이라는 ‘제약’을 전제로 활동해야 한다. 그 제약에 적응하는 게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작가, 비평가, 기획자 모든 미술인에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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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이정 ‘새로운 회화’: 회화 위기론에서 비롯된 (서울아트가이드 온라인 2019)

2) 반이정, 너무 많다. 작품도, 전시장도, 기획자도, 해설문도 (더 무브The move 2018년 10월)

3) 반이정, '화려한 비엔날레의 우울한 두가지 현실 (시사저널 890호 2006년 11월14일)

4) 이경민, 미술시장의 구조(2) : 국내외 아트페어와 경매, (아트로 2018) 

https://www.theartro.kr:440/kor/features/features_view.asp?idx=1649&b_code=10e

5) 반이정, 5회 특급소나기 2019 서문 (울산문화예술회관 2019)

6) 반이정, 김환기라는 예술, 85억원이라는 해방구 (시사저널 1496호2018년 6월) 

7) 반이정, 데미안 허스트 '베니스' 개인전: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욕망의 보물들 (플레이보이 코리아 2017년 10월).

8) 반이정, 5회 특급소나기 2019 서문 (울산문화예술회관 2019)


필자: 반이정 dogstylist@naver.com

미술전문지 외에 「중앙일보」 「시사IN」 「씨네21」 「한겨레21」 「한겨레」 「경향신문」등에 미술 칼럼과 시사 칼럼을 연재해왔다. 「교통방송」 「교육방송」 「KBS」 매스미디어에 미술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송은미술상 에르메스미술상 등에 심사와 추천위원을 지냈고, 세마SeMA-하나 미술평론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서울대 세종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 『예술판독기』 『사물판독기』 외에 여러 책을 썼다. 유튜브 채널 ‘반이정의 예술판독기’를 운영한다. 


이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19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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