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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정신 없는 미술

강태성


The title page of the 1859 edition of 「On the Origin of Species」


만지는 것은 생각이 아니다. 미술과 음악은 (…) 생각을 넘어가는 것이다.
- 플로티노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 출판 이후, 인간은 생리학적인 인간이 되었다. 인간은 르네상스 이후의 형이상학적인 존재로 인식되다가 급기야 생리학적 인간이 된다. 진화론은 현대의 과학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바꿔놓았다. 이때, 시각은 물리적·물질적 세계관으로 인간을 무장시켰다. 심지어 생명까지도 기계적으로(메카니컬하게) 이해하게 하였다. 에밀 졸라는 정형외과 의사처럼 시를 창작하기를 주장하였다. 외과 의사가 몸의 일부를 절개하고 꿰매는 것처럼 글과 그림을 조립하고 편집한다. 그의 생각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비롯하여 메카니즘에 기초한 다양한 현대미술에 영향을 준다. 세잔과 입체파 미술가들, 추상미술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현대문화에 큰 영향을 준 콜라주(주의)를 찾을 수 있다. 이는 브라크와 피카소를 시작해서, T.S.엘리엇과 제임스 조이스도 관련된다. 또한 뒤샹과 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양한 인용과 전유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 작가의 창작행위의 자율성이 강조된 것이다. 

이 자율성은 현대에는 미(美)를 절대적인 미가 아닌 상대적인 미로 인식하게 한다. 르네상스 이후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사람들은 자율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였다. 정치적 자율(민주주의), 경제적 자율(자본의 자율), 미술의 자율(평면, 색, 볼륨 등), 이러한 자율성은 인본주의적 주체성과 함께, 몸의 주체성으로도 전개된다. 영혼의 집으로서의 몸을 이해하기보다 생리학적 몸, 심지어 배설하는 몸(지나 파네 등)을 이해하여, 그러한 자율성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인간은 몸과 성을 더 탐닉하게 되었다. 페티쉬 미술도 이 연장선 위에 있다. 오귀스트 콩트는 사회학을 창설하고 과학주의를 주장했었다. 그는 과학적인 학문의 교주가 되었으며, 아내가 사망하자 그녀의 머리카락을 잘라 보관하며 우상화시켰다. 오브제의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페티쉬였으며, 성적인 것도 포함하는 용어가 된다. 곧 페티시는 “우상”이다. 이 미술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절대적인 존재의 자리에 욕망과 성, 물질, 우상을 놓았다. 몸과 물질, 상품에 대한 열망으로 전개된다. 예술작품 역시 상업적인 페티쉬로 전개되며, “상품”이라는 의미로 바뀌게 된다(데미언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등). 이렇게 현대문화는 정신보다는 물리적인 상태로 전개되는 특성을 갖는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러 과거 이성중심주의의 시각에서 버림받았던 정신이나 영성을 주제로 다루는 시도는 있지만, 정신을 깊게 이해하기보다 비이성적인 영역이나 다원적인 종교를 다루는 데 그치고 있었다. 실제 인간은 육체적이기도 하지만 정신을 소유하고 있기에, 정신적인 내용이 문화적으로 충족되지 않을 때, 인간은 왜곡된다. 그래서 잃어버린 정신의 영역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 

물론 현대의 정신에 관한 학술적·예술적 업적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르네 위그의 『예술과 영혼』이라는 책도 있었으며, 모리스 터크만이 기획한 ‘추상회화의 정신성 : 추상회화 1890-1995’ 전시에서, 추상미술을 정신적인 측면으로 재해석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업적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은 정신적인 미술과는 멀어진 것이 분명하고, 우리나라의 미술도 동일하다. ‘정신’(Spirit)은 Psyche(헬라어) ‘숨, 영혼’을 의미하며 Rauch(히브리어)나, Spiritus(라틴어)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곧 생명의 호흡과도 같은 것으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다. 정신은 영혼과 마음을 포괄하며, 정신적인 미술은 동양의 문화에서부터 형이상학적 주제들, 존재, 시간, 장소, 초월성, 비가시성, 보편과 절대 등 너무나 많은 정신적인 다양한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제 200년간의 물질문화의 발전에 잃어버린 정신적인 문화를 찾아 연구와 창작을 시작할 때이다.


- 강태성(1965- ) 서울대학교 석사, 파리1대학교 팡테옹 소르본, 예술학 박사. 전 국민대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 주임교수. 『박물관학의 의미』(2016, 국민대출판부), 『부정의 예술』(2016, 국민대출판부) 등 지음. 현재 예술학, 미술비평연구 및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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