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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휴스턴미술관과 장소 특정적 커미션 작품 최병훈의 ‘선비의 길’이 지닌 의미

김주원

최병훈, 선비의 길, 0.7×0.7×3m, 현무암, 휴스턴파인아트미술관 ©richard barne


미술사학자 권미원의 말대로, ‘장소 특정성’이라는 용어는 “전시 카탈로그 에세이, 보도자료, 기금 신청서, 잡지 리뷰와 미술가의 선언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빈번하게 눈에 띈다. 더군다나 미술가, 건축가,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 미술 행정가, 그리고 기금 단체까지도 이 용어를 ‘비판성’이나 ‘진보성’의 기표인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1960년대 미니멀리즘의 교훈으로부터 발원한 이 용어는 오늘날 단지 미술을 넘어 비판적 도시이론, 미술과 건축에서의 공간과 정치 문제, 그리고 정체성 정치와 공공영역에 관한 논의 등 도시생활과 공간을 조직하는 폭넓은 사회·경제·정치적 과정을 문화적으로 매개한다.”

그 최근 사례로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파인아트미술관(Museum of Fine Arts, Houston, 이하 MFAH)이 개관한 신관 ‘낸시 앤 리치 카인더 빌딩’ 건축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건축가 스티븐 홀(Steven HOLL, 1947- )이 설계한 건축물을 중심으로 내외부 공간에 맞는 ‘장소 특정적’ 현대미술작품을 설치했다. 지난해 11월 21일 대중에게 공개된 프로젝트에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 등 권역별 대표 작가 8인을 선정하여,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 웨이웨이, 엘 아나추이 등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는 스타 작가가 참여했다. 한국에선 공예가이자 아트퍼니처 디자이너 최병훈(1952- )의 작품이 설치되었다. 3m 높이의 검은 현무암 조각 작품 <선비의 길(Scholar’s Ways)>세 점이 영구설치된 것이다. <선비의 길>은 옛 한국의 선비문화이자 선비정신을 함축하는 ‘수석(Scholar’s Rocks)’을 모티프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수석의 오묘한 형상들은 음양으로 이루어진 대 자연의 이치를 품고 있다. 옛 선비들은 이러한 수석을 정원이나 서재에 두고 일상에서 감상하며 미적 교감과 인격 수양의 대상으로 삼았다. MFAH 커미션으로 설치된 이 작품은 동양의 음양 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의 옛 ‘선비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미술관 서쪽 입구 건물 외부를 둘러싸고 흐르는 얕은 수면 위에 설치된 최병훈의 <선비의 길>은 자연을 관조하는 선비의 모습을 표현했던 조선시대 문인화를 연상시킨다. 검은 묵을 떠올리게 하는 현무암의 깊고 검은 빛은 연마하지 않은 돌 표면의 자연스러움과 대비되면서 조선 선비의 고고한 품격을 보여준다. 



최병훈, 선비의 길 03 아이디어 스케치


MFAH는 <선비의 길>을, 이미 조성되어 있던 ‘이사무 노구치 조각정원’과 가까이 설치하였다. 작품 <선비의 길>이 작가 최병훈에게는 ‘선비의 길’, ‘선비정신’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지만, MFAH의 입장에선 작가의 제작의도를 넘어서 ‘장소’(성), 특히 미술관이 재현하고자 하는 미래의 MFAH의 정체성과 공간 구성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작가의 예술작품이 아틀리에에서 벗어나 미술관이라는 공공영역에 설치된 순간, 우리를 둘러싼 폭넓은 사회 경제 정치적 과정을 매개하는 국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시공간의 경험이 동질화되고 있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역적 특수성이 소멸되고, 지리적 위치에 기반을 둔 개인과 그 예술의 정체성이 동질화 되고 있는 전지구화 상황에서 ‘장소 특정적’ 미술의 권역별 공간 구성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차이와 경계를 포괄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움과 인간의 제작물인 예술에 대한 경의의 재현이자 미래 미술관이 가야할 방향이다. 따라서 MFAH의 건축 프로젝트와 최병훈의 <선비의 길>을 포함한 작가 8인의 예술작품은 미술관의 미학적 정치적 미래와 그 풍경을 재현하고자 기획된 MFAH 프로젝트의 총체이다.

이번 MFAH 프로젝트는 국내에선 공예가이자 아트퍼니처 디자이너로만 불려왔던 최병훈의 예술 스펙트럼이 또한번 전방위적인 실험의 세계로 확장됨을 뜻한다는 점 또한 마땅히 주목해야 할 의미다.


- 김주원(金珠嫄)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박사. 대구미술관, (재)유영국미술문화재단 학예실장,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수석큐레이터. 전시 <이것에 대하여>(2020) 책임기획, 『한국현대예술사대계V』(시공사, 2005) 공동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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