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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한국 퍼포먼스 아트의 과제

조수진

왕치(윤진섭), Good bye Covid-19, 2021.5.25 3pm
장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홍제천, 촬영: 김정현


지난 몇 년 사이 미술 현장에서는 한국 퍼포먼스 아트의 역사를 개괄하거나, 동시대 미술과 퍼포먼스의 연관성에 주목하고, 퍼포먼스를 작품의 주된 제작 수단으로 삼는 작가들의 전시가 자주 열렸다. 그간 해프닝, 이벤트, 행위미술, 행위예술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온 한국 퍼포먼스 아트의 역사는 어느덧 50년이 넘어, 이제는 미술에 문외한인 대중들조차 퍼포먼스, 행위미술, 행위예술 등의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례로 작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의제는 퍼포먼스였는데, 그와 연동하는 전시로 ‘하나의 사건’(2020.8.12-12.31)이 개최되어 조각, 설치, 영상, 인터랙티브 아트 등의 동시대 미술이 퍼포먼스와 어떤 양상으로 접합되고 있는지를 추적한 바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얼마 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는 ‘아트 오브 도플갱어: 윤진섭’(5.13-6.16) 전시가 열렸다. 전시의 주인공 윤진섭은 그룹 ST 출신의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교육자로서 일평생 다면적 활동을 펼쳐온 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다채로운 경력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한국 퍼포먼스 아트 역사의 산증인으로서의 활동이다. 윤진섭은 1970년대에 ST의 동료들과 함께 이벤트를 처음으로 선보인 후 현재까지 60여 점에 달하는 퍼포먼스를 꾸준히 발표해 왔는데, 전시 개막일에도 특유의 유희적이며 관객 참여적인 퍼포먼스 <예술자유공생군창단 선언>을 선보였다. 

비슷한 시기,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작가 이불이 작업 전반기 10여 년 동안 집중적으로 발표했던 퍼포먼스와 소프트 조각 작품을 다룬 전시 ‘이불–시작’(3.2-5.16)이 소개되었다. 이불 예술 세계의 출발점인 1980년대 후반은 국가 권력의 폭압과 민중적 저항, 대중문화의 부상과 순수예술의 경계 짓기가 치열하게 공존했던 시기였다. 이 같은 격동의 시대, 여성 신체를 통해 남성적 모더니즘 미술의 기성 권위에 도전했던 작가의 퍼포먼스는 미술계에 새로운 청년 전위의 등장을 선고하며 이후 이불 작품세계의 행로를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로 그간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초창기 퍼포먼스 33점 중 12점의 기록이 전격 공개되어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공개된 이불의 퍼포먼스 기록 영상들 속에서 우리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미술계 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던 퍼포먼스에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의 해프닝, 1970년대의 이벤트는 소수 전위미술가의 실험적 행위로서 주로 미술계 내부에서만 알려져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 무렵 퍼포먼스는 서울 대학로 등과 전국 각지에서 펼쳐진 여러 행위미술제를 통해 비로소 대중에게 미술의 한 형식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신진 작가였던 이불의 퍼포먼스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해, 중견 작가 이건용, 성능경, 윤진섭 등의 작품과 같은 시공간에서 발표되며 한국 퍼포먼스 아트 역사의 새 국면을 형성해 나갔다. 

이처럼 오늘날 실험미술로 불리고 있는 1960-70년대의 전위미술과 탈근대적 성격의 1980-90년대 신세대 미술은 퍼포먼스라는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연극, 무용, 음악 분야에서 활동하는 당대 공연예술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1980년대 말 다원예술 단체 ‘한국행위예술협회’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즉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는 그 시작부터 다원예술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것인데, 최근 가속화되어가는 예술 장르의 융복합 현상 역시 미술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다원예술로서의 퍼포먼스의 역사를 미술사로 간주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시점에서 과거 혹은 동시대 퍼포먼스 창작 현장의 진면모를 접하거나 그 기록에 근거해 역사화하기란 매우 어렵다. 퍼포먼스 작품의 기록과 수집, 보존, 연구 체계가 한국 미술계에 온전히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한시적으로만 존재하는 실시간 퍼포먼스 특유의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그간 퍼포먼스를 독자적인 미술 작품으로서 인지하고 지원하려는 미술계의 노력이 부족했던 데도 원인이 있다. 그 결과 한국 퍼포먼스 아트의 집단적 활기는 명성 있는 소수 작가의 개인적 성취로 수렴되어 예술 운동으로서 미술사적 가치를 부여받을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행여 특정 작가의 퍼포먼스가 주목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을 동시대 타 작가들의 퍼포먼스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 그것은 오로지 작가의 원숙기 작품을 준비하기 위한 전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해당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 퍼포먼스가 제일 늦게 주목받을 뿐 아니라, 예술 세계 전반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늘 최변방에 위치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난 50여 년간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퍼포먼스 작품들이 얼마나 많을지, 지금은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실시간 퍼포먼스는 결국 그것의 기록물인 사진이나 영상, 오브제, 혹은 작가의 언명이나 퍼포먼스 시나리오의 형태로 남게 된다. 퍼포먼스 작품의 본성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미술 기록지침이 마련되지 않으면, 기록물로 존재하는 실시간 퍼포먼스와 사진이나 설치, 미디어아트 작품 제작을 위해 수행된 퍼포먼스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종국에는 이들 작품의 범주 속으로 흡수되어 버릴 위험이 크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퍼포먼스 작품의 진의를 발견할 수 없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외에서 이 사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외에서는 테이트(Tate) 미술관 등이 앞장서서 퍼포먼스 아카이빙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주도하에 「퍼포먼스 미술자료 기록지침 연구」가 시행된 바 있다. 또 2019년에는 경기도미술관이 국내 국공립 미술 기관으로는 최초로 성능경의 퍼포먼스 <신문읽기>(1976)의 개념을 소장한 바 있으며, 2020년 서울시립미술관이 임동식의 작품을 아카이브 연구로 통찰한 전시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2020.8.19-12.31)을 마련하면서 작가의 퍼포먼스와 그 기록물로서의 사진, 드로잉, 회화의 연관 관계에 주목한 것 역시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현장의 모든 미술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작품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 그리고 그 자료를 발견하고 전시하며 연구하는 자의 해석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일회성이 본질인 퍼포먼스 작품에서 기록만큼 필수적인 조건은 없다. 그간 미술계의 여러 사람이 절박하게 퍼포먼스의 기록물을 수집해 왔지만, 이에 주목하는 연구자나 작품으로 소장하는 미술관이 없다면 한국 현대미술사의 상당 부분은 결국 소실되고 말 것이다.


- 조수진(1969- )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박사. 예술경영지원센터 퍼포먼스·미디어 미술자료 기록지침 연구 책임연구원(2020). 『퍼포먼스 아트: 한국과 서구에서의 발생과 전개』(서강대학교 출판부, 2019)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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