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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위기에 의해 더욱 강화된 생체 통제 권력

이선영

확진자가 2,000명 대 마저도 뚫는 기염을 토하는 위기의 나날 속에서, 방역 당국이 정해준 순서에 따라 드디어 나도 접종했다. 접종 당시 1차 접종자 비율이 40% 정도 됐으니까, 전 국민 줄 세우기 중 그래도 중간 이상에는 속한 셈이다. 대학 학력고사 이후, 전 국민 줄 세우기에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몇십 년 만이다. 앞으로 이 간격은 더 좁아질 것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관련된 이런저런 통계치가 어딘가 차곡차곡 쌓여 정책에 반영될 것이다. 5분 거리의 동네병원에서 주사 한 방 맞는 너무 간단한 절차는 그동안 고대했던 기다림의 순간을 무색하게 했다.


김기라는 현대의 일상을 지배하는 패스트 푸드 제국과 그에 깔린 죽음의 정치경제학을 
고전적인 정물화 방식으로 표현했다.


델타를 넘어서 오메가까지 넉넉하게 명명될 잠재적 변종 바이러스가 줄줄이 대기 중임을 생각하면, 위험에 방치된 기간이 너무 길지 않았나. 선진국은 이미 작년 12월부터 맞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너무 늦게 시작해 불안의 나날이 더욱 길어졌다. 뭐든 빨리빨리 잘하는 국민성이 큰 역할을 해서 성공적이었던 K 방역이 백신 수급 때문에 7월 한 달여 간 소강상태에 있던 와중에 대규모 감염에 뚫린 것이라 더욱 화가 난다. 아직 원천기술이 없는 우리에게, 수급 관련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우리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은 나라와 비교하곤 하는데, 현재로서는 당면한 대위기에 대한 유일한 게임체인저가 될 백신 접종이 기대치에 못 미친 점은 정책상의 오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8월 9일자 신문에는 한국의 접종 완료자 비율이 15.0%로, OECD 38개국 가운데 꼴찌라고 나와 있다. 전쟁보다도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 예측되는 전염병은 계속 창궐할 것이며, 그 주기도 더 짧아질 것이다. 내전과 전염병을 함께 겪고 있는 지옥 같은 나라도 있지만, 동일자를 위험에 빠트릴 적대적 타자는 이제 차원을 달리하여 존재한다. 그것은 결코 자연의 문제만은 아니다.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대로 살고 있지만 인간이 너무 밀접 접촉을 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의 방식 또한 집단적이다. 전 국민이 관리하는 자와 관리받는 자로 나뉘는 관료주의는 관리가 잘 될 수 있는 만큼 안될 가능성도 높음을 알려준다. 한정된 자원을 관리를 통해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와 연결된 평등의 문제는 더욱 중요해졌다. 몸의 회복력이 경제의 회복력과 밀접한데, 빈부의 격차는 개인부터 국가까지, 그리고 직종별로 선명하게 갈린다. 선진국은 부스터 샷까지 고려하는 가운데 후진국의 접종률은 저조하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저개발국가들은 백신이 부족해 100명당 접종 회수가 평균 1.5회 정도에 불과’(연합뉴스 8월 9일자)하다. 그나마 그 1.5%가 그 나라의 기득권일 것이라는 추측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머지 민초들은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은 우리의 몸뚱아리 깊숙한 곳까지 정치경제학의 영역임을 일깨웠다. 매일 먹는 음식의 칼로리와 몸무게를 체크하는 현대인은 미셀 푸코가 생체 통제 권력을 강조한 이래, 이제는 자기조절의 단계가 된 지 오래다. 지배가 강제를 넘어서 내면화되면 조절이 되는 것이다. 권력의 자동화에 기술은 큰 역할을 한다. 인증의 단계는 겹겹이 둘러쳐 있어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합법적인 존재임을 밝혀야 하는 순간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 번거로운 절차에 직면할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 너는 누구냐’라고 되묻고 싶다. 인간이 인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술 발전은 엄청나다. 타인의 노동에 대한 착취는 고전적이다. 경악할만한 범죄가 거의 타인의 몸을 도구화하는 것에서 벌어진다. 얼마 전 친구를 성매매시켜서 어마어마한 돈을 챙기고 나서도 결국은 친구를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범죄자는 황금알을 낳던 거위의 배를 갈랐다고 자책할 뿐 죄의식은 없어 보였다. 지배의 정치경제학은 진보하는 과학기술의 힘을 얻어 더욱더 세밀해진다. 권력이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시대에 예술은 권력에 상호작용하는 몸을 다시 중심에 놓아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소우주-대우주를 연결짓던 인간처럼 이제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곳은 바로 몸이기 때문이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등단(1994).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 역임. 제1회 정관 김복진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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