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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약속하는 미래

정필주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와 사회, 경제적 지위를 법률로 보장하고 제도적 정비를 꾀한 ‘예술인 복지법’이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한 2011년으로부터 만 10년이 흘렀다. 시각예술인 및 문인들과 같은 1인 예술인들의 고유한 창작환경에 대한 고려 부족과 고용 중심의 창작 형태들만을 중심으로 법안이 설계되었다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예술인 복지법이 몰고 온 변화 또한 만만치 않다. 

예술인 복지법에 설립 근거를 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심사를 통해 대상자가 예술인임을 증명하는 ‘예술인 활동증명’은 재단이 운영하는 복지사업 참여를 위한 기본 조건이 되었다. 국가가 예술인의 ‘자격조건’을 정하고, 그 증명 내역을 공인/관리하는 것이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인으로서 도움을 받을 권리를 자각하고 법률을 근거로 그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 자체는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 개선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제공: 문화연대 culturalaction.org


그렇다면,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도 그 이름처럼 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인가? 보통 줄여서 ‘예술인 권리보장법’으로 부르는 이번 법안은 크게 ‘예술표현의 자유 보장’과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 보호 및 침해 행위 금지’ 및‘성희롱, 성폭력 행위의 금지’를 목표로 하는 법안이라 할 수 있다. 법안은 이를 위해 각종 권리 침해 및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직접 개입이 가능한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 및 예술인보호관 제도를 운영한다. 법안은 불공정 행위를 한 기관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을 명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인보호관의 직접 조사 권한도 부여하고 있다. 예술인보호관의 현장조사나 위원회의 분쟁 조정 등은, 법률적 한계로 인해 수동적인 조언에 그쳐야만 했던 지금까지의 피해 예술인에 대한 지원 패러다임을 크게 바꿀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본 법안은 위의 제도들을 누가, 어떻게 현장에서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까지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자체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기본 권리들을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다시금 보장할 것을 선언한 선언문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술인이기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장시간 근로문제, 문화사업 관련 기관이나 기업, 단체의 우월적 지위 남용, 이른바 예술판이라 불리는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기 어려운 성폭력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법안이 소개하는 위의 제도들은 어찌 보면 이미 각종 노동 관련법이나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이미 도입된 것들로 새로운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필자가 수년간 예술인 상담센터 업무 및 예술인 인터뷰를 진행해온 바에 따르면, 권리피해를 입은 예술인들이 피해 구제 과정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관련 제도나 기관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제도나 기관이 요구하는 자료를 준비하기 어려운 환경, 그리고 예술은 필수적이지 않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피해자임을 설명하고 증명해야만 하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인의 창작환경이나 직업적 특수성을 파악하고, 그러한 특수성이 야기하는 권리피해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하우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의 구축 및 운영인 것이다. ‘같은 직장’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려운 후배 화가와 선배 화가 간의 성폭력 사건이나 권리 피해 사건에서, 우월적 지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규명할 것인가의 문제는 노동법의 전문가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또한, 예술인 복지법이나 공정거래법 등을 기반으로 노하우를 쌓아온 예술인 상담센터와 같은 기존 제도들과 어떤 식으로 시너지를 낼 것인지도 1년 후 법안 시행을 앞두고 진행될 시행령 개발 및 실천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다.



- 정필주(1980- ) 이화여대 사회학 학사,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서울시 문화예술 불공정피해 상담센터 코디네이터, 예술기획단체 예문공 대표 역임. 『화가의 빛이 된 아내』, 『큐레이팅을 말하다』(공저) 지음. 「2010년대 이후, 예술가운영 신생공간을 둘러싼 쟁점들」 등 논문. 현 울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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