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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왜 미술인가

권근영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1962, 캔버스에 유채, 130×89cm, 리움미술관


신문 지면에서, 또 매거진에서 미술 기사는 반짝인다. 전시장 전경은 희고 깔끔하며, 그 속의 사람들마저 멋스럽다. 톱 기사에 배치된 작품 한 점의 존재감 또한 커서, 종이 매체 문화면에서 미술이란 장르는 가히 꽃이다. 
이런 미술면을 만들다가 몇 년 전 방송으로 옮겨 오고는 달라졌다. 화려한 영상과 사운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배우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하고만 비교해 봐도 그랬다.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전시를 뉴스로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소개할까. 구어체를 지향하는 방송 뉴스에서 미술가들의 언어는 게다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호가로 들썩이고 구체적인 숫자가 있는 경매라면 다를까. 김환기의 <우주>가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100억원대를 넘기는 대기록을 세우던 2019년 11월에는 주말 저녁 뉴스 시간에 홍콩에서 벌어진 이 역동적인 장면을 때맞춰 보도했다. 일주일 전부터 공들인 그 리포트에 달린 댓글은 이랬다. ‘그들만의 리그.’ 

이틀에 서너 건 정도의 전시를 둘러보던 신문 미술담당 기자가 방송 문화부장으로 적을 옮기면서 궁금증이 많아졌다. 두 시간 남짓 편안한 좌석에 몸을 묻은 채 손쉽게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올 수 있는 극장, 살아 숨쉬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무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공연장에 비해, 작품이 손상될까 지켜보는 시선 속에서 머리 쓰고 다리 써야 하는 전시를 굳이 찾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관객 입장에서는 이 전시냐 저 전시냐가 아니라, 이 영화냐 저 공연이냐, 그 전시냐 중에서 선택할 텐데…. 그런 경쟁에서 전시회가 이길 수 있을까, 걱정마저 드는 게다. 왜 그림이어야 할까.  

‘기생충’, ‘극한직업’, ‘엑시트’ 등 1,000만 관객이 몰린 영화가 5편이나 나왔던 2019년의 호황 직후 감염병이 터졌다. 이제 극장엔 새로운 영화가 좀처럼 걸리지 않는다. 300만 관객만 넘겨도 흥행이라고 할 정도니 옛날 영화를 틀며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공연장은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연기와 취소를 반복한다. 해외 연주자들의 투어도 꽁꽁 막혔다. 그렇게 팬데믹 3년차다. 이렇게나 오래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끼고 살줄은 몰랐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건 언감생심, 극장의 팝콘맛조차 잊은 지 오래다. 바깥은 위험해서 방에서 귤 까먹으며 스트리밍 서비스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여가생활이 됐다. 그렇다면 왜 그림이어야 할까.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경 ⓒ 김민정


지난 가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이건희 컬렉션을 보러 갔다가 일요일 오전 치고 많은 사람들에 깜짝 놀랐다. 리움이 4년 반 만에 마련한 기획전은 또 어떤가. 온라인 예약이 하도 어려워 “금요일 저녁쯤에 확인해 보면 갑작스런 불화(?)로 인해 나온 취소표를 건질 수 있다”는 ‘꿀팁’까지 돈다. 누군가의 가족 나들이 혹은 연인과의 데이트가 ‘불의의 사정’으로 취소된 것이 다른 이에게는 보기 힘든 전시를 챙겨볼 수 있는 뜻밖의 행운이 됐다는 얘기다. 그 정도로 많은 이들이 보고 싶어하고, 또 보기 힘든 게 전시가 됐다. 

당연했던 많은 것들이 멈추면서 속절없이 지금 이곳에 발이 묶인 사람들은 조용히 주변을 ‘보기’ 시작했다. 또 전시장을, 아트페어를 찾는다. 역대 최대 규모의 박수근 회고전은 코로나로 관람 인원을 제한했음에도 개막 7주 만에 4만 4,000명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 ‘한국의 밀레’가 그려낸 가장 가난했던 시절을 들여다보며, 우리에게도 반드시 봄은 온다는 희망을 건져 올리는 걸까. 국립중앙박물관이 마련한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 만을 위한 공간 ‘사유의 방’엔 두 달 간 11만 5,000명이 다녀갔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기에 지금만한 때도 없지 않나. 그래서, 미술이다.


- 권근영(1977- )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경영학 박사. 논문 「광주비엔날레 연구」. 『완전한 이름: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나는 예술가다: 한국 대표 예술가 10인 창작과 삶을 말하다』 등 저술. JTBC 기자로 올림픽과 비엔날레, 오스카상과 쇼팽콩쿨을 가로지르고 있다. 現 JTBC 보도국 스포츠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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