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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이미지 호환성의 시대: 회화(?)의 존재론적 의미

고동연

디지털 세계와 기재가 미술계의 창작과 유통을 급격하게 변화시킨 우리 시대, 여느 기자가 회화의 미래에 대하여 물었다. 온라인으로 순수미술의 정보를 얻는 일이 일상화된 최근, 왜 젊은 작가들이 회화를 창작 매체로 가장 선호하는 것인가였다. 국내 미술계가 회화의 매체적 특징을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도 따져야 하고 그에 앞서 근본적으로는 회화의 특수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나, 어떤 세대보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2-30대 작가 사이에 회화나 수작업을 강조하는 공예적인 작업이 유행한다면 그 이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올해 초 성수동 볼록에서 열린 ‘메타-리얼(1.3-1.15)’을 비롯하여 리움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 2022(3.2-7.3)’, 금호미술관의 ‘금호영아티스트 2부(5.6-6.19)’에서 회화와 공예, 회화와 연극, 2차원과 3차원, 시간을 초월한 회화 속 공간과 실제를 구분하기란 별반 의미가 없어 보인다. 불규칙한 합성수지를 평면작업인 캔버스 토대로 사용한 경우에서부터, 기하 추상화를 3차원에 구현한 듯한 소목장세미의 구성적 리얼리티에 이르기까지 ‘회화적인 구성’은 장식적이고 평면(혹은 디지털 가상공간의 N차원)으로 호환이 쉬워 보이는 일종의 패턴을 지닌다. 특정한 형태와 색상의 체계, 즉 ‘정보’가 2차원, 3차원, 편평하거나 매끈한,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스며들고 펼쳐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메타-리얼’의 기획자이자 공예 전공 출신 작가 김준성은 ‘메타’라는 단어가 지닌 전략적인 의미에 주목한다. 그리스어의 메타(μετά→ 뒤, 넘어서, 와 함께)로부터 유래한 이 단어는 미술과 유사한 분야인 연금술에 더 적합하다. 작가란 재료의 변형을 통하여 전에 없던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준성이 사용하는 ‘메타’의 의미는 재료가 아닌 리얼리티를 변형시켜 구현하는 예술적 매체가 서로 통합되고 변화되는 단계를 암시한다고 하겠다. 

한때 회화는 서구 모더니즘의 핵심 매체였다. 미국 평론가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RIMP)는 1979년 전시 ‘픽처스(Pictures)’의 서문에서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작업을 비롯해 사진이나 영화 속 장면을 차용한 동시대의 회화와 사진을, ‘이미지’를 무대에 올리고 꾸며서 벌이는 일종의 연극적인 이벤트로 설명했다. 모더니즘의 평면성을 표피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연기로 모방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랙쇼를 연상시키는 ‘연기(staging)’한다는 단어는 회화가 적어도 공격의 대상이었고 그러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미술사적·비평적 의미가 파생되는 시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이미지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하여 재매개하는 일이 일상적인 현재엔 예술적 매체의 속성이나 지위를 논하는 것은 더 이상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작가의 손자국이 남은 회화에서조차 이미 특정한 그리기 방식은 답습의 대상이 된다. 적당히 버무려져 채도가 낮춰진 색상과 붓질, 부담되지 않는 정도의 질감을 가진 표면, 따뜻한 색상은 복제 수단이 나날이 정교해진 시대에 ‘개인적인’ 작가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발로라기보다는 ‘감성’적인 고급 문구류나 일러스트레이션의 ‘정보’나 ‘유형’을 연상시킨다. 

천재 작가의 표현주의적인 ‘붓자국’이 부담스럽고 과장되어 보이지만, 각종 이미지의 정보를 다양한 ‘메타’를 통하여 실현시키는 것이 가능해졌기에 회화와 회화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이 경제적이고 물리적인 필요성 이외에 어떤 존재론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에 관객으로서 자기 연민이 아닌 공통의 메시지가 드러나기를 희망해본다. 회화를 찢거나 부수고 다시 붙여서 3차원적인 작업을 만드는 과정이 회화의 물리적인 확장성과 대중성을 확보할 수는 있겠으나 메시지를 가늠하기 어렵거나 부정하는 ‘공예’적인 회화는 표현주의적인 회화보다 더 나르시스틱하게 보인다. 물론 ‘메타-리얼’전에서 물감이 투명한 합성수지 속에 스며들고 에디션으로 여러 결과물이 놓여 있는 장면에서, 스티로폼의 음각과 양각을 뚫어서 만들어진 형태와 배경이 공존해서 보이는 작업에서 공예, 조각, 회화의 다양한 기술과 미학적 고민이 동원되는 부분은 고무적이었다. 그 종착역이 팔리기 쉬운 회화가 아닌 매체 간의 호환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지가 호환성을 지닌 존재로 전락하고 2차원의 회화가 경제·사회적 보상에 유용한 수단으로 더 사랑받을 때 작가의 전문성과 주체성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이 생겨난다. 고전적인 작가와 매체의 정체성을 논하는 것이 구태의연하지만 회화를 사랑하는 시장도 결국 개인의 신화로부터 출발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술 매체와 이미지의 호환성과 유용성 대신 내용이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를 간과할 수 없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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