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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오늘 전시의 유효함에 대해 1)

권혁규

팬데믹 이후 물리적 세계는 점점 협소해지는 듯하다. 미술계 역시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기존 물성을 대체, 재정립하는 실험을 불가피하게, 또 재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전시를 포함한 많은 문화 예술 행사가 온라인과 디지털 공간으로 그 무대를 옮겼고, 주요 미술관과 전시장은 물론 개별 작가와 큐레이터들까지 머신러닝과 VR(Virtual reality) 관련 기술을 활용한 (가상) 전시 공간을 구축하며 물리적 한계로부터 벗어나는 체험과 감상을 제시한다. 전시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카이빙하는 정도의 보조적 기능을 맡아왔던 온라인 공간은 이제 물리적 전시를 대체하며 그 활용에 대한 기존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게 됐다.



보존과학자 C의 하루 2020.5.26-11.29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품수장센터
ⓒ Matterport.com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기존의 오프라인 전시는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그것은 온라인, VR 전시로 대체되며 영원히 사라지게 될까? 이제 전시의 물성은 거추장스러운 해체의 대상일 뿐인가. 기존 전시의 형식과 물성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전시가 갖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여러 사물, 장소, 개념 간의 의미와 경험을 발생시킨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탈큐레이팅적(para-curatorial) 실천과 연결 지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 전시를 둘러싼 최근의 질문과 회의적 입장은 동시대 큐레이팅에서 새롭지 않은 논의의 확장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물리적) 전시가 사멸할 것인가에 관한 성급한 예언을 내리는 대신, 최근의 온라인 전시가 기존의 큐레이팅 실천과 어디서 어떻게 만나고 어긋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대부분의 온라인 전시가 기존 오프라인 전시와 작품을, 또 그것의 감상을 모방, 복제한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온라인, VR 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오프라인 전시를 해체하기보다 그것을 일종의 자기 존재 조건으로 설정하며, 공간, 작품, 텍스트, 신체와 시선의 이동 등과 같은 기존 전시의 구성을 모방한다. 대상으로 삼는 전시가 부재한, 그러니까 실제 오프라인 전시를 근거로 설정하지 않는 온라인 전시라 하더라도 공간, 작품, 조명, 신체/시선의 이동 등 기존 전시의 물리적 경험을 전제로 (가상) 환경을 구축하곤 한다. 온라인 전시가 시도하는 물리적 한계의 극복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구축이 아니라 기존 전시 매체를 재구현하는 행위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최근의 온라인 VR 전시를 기존 전시의 시간, 공간, 물질, 경험을 포함한 고유의 성질과 조건을 드러내는 일종의 알레고리라고 가정해보자. 온라인 전시는 탈큐레이팅/전시의 흐름 속에서 줄곧 의심받아 온 전시 매체 고유의 성질과 형식, 경험을 조금 다른 환경 안에서 역으로 강조한다고 말할 수 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d KRAUSS)는 『Under Blue Cup』에서 “매체는 기억이다(Medium is memory)”라고 쓰며 포스트 매체는 종말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 아닌 일종의 기억장치임을 환기시킨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의 온라인 전시가 기존의 전시 매체의 특수성을 확장 재구성한다고 주장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온라인/오프라인 전시는 단절된 매체도 해체의 대상도 아닌 연속과 확장의 개념으로 사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온라인 전시의 활용과 함께 오프라인 전시의 물리적 현존성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또 특별하게 감지된다. 오늘 전시는 당대의 복잡성 안에서 그동안 축적된 전시의 경험, 가치들을 제한된 물리적 속성과 테크놀로지로 구분, 정의하지 않으며 매체의 특수성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그렇게 과거를 무한히 상기하고 이전의 실험을 이어가며 독창성을 한계 없이 확장하는 변주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1) 필자의 소논문 「분열의 활성화, 그리고 불멸의 전시」(2022.8)를 요약·발전시켜 게재.


- 권혁규(1982- ) 뮤지엄헤드(museumhead.com) 책임큐레이터, 기획자 공동 운영 플랫폼 WESS 공동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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