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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금붕어, 이야기, 엑스 시추

정희영

자그마한 금붕어가 살랑거리며 헤엄치는 모습을 혼자 한참 바라본 적이 있다. 꼬리와 지느러미를 살랑이는 모습에 푹 빠졌더랬다. 연모는 금세 시들고 변하기 마련인지라, 살랑이는 꼬리를 바라보는 기쁨보다 금붕어에게 들여야 하는 애끓음이 더 커진 자들은 이들을 호수에 유기했다. NBC 시카고 기사에 따르면, 최근 미국 켈러호수에서는 사람 팔뚝만한 거대한 금붕어 떼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호수에 남겨진 금붕어는 혹독한 기후에도 잘 견디고 번식이 빨라 수질을 악화시키며 대략 25년을 살아간다.




고영찬 개인전 ‘엑스 시추’ 전시 전경 ⓒ photo by Fang Wei


장소에 따라 변화한 금붕어들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고영찬 개인전 ‘엑스 시추(Ex-Situ)’(4.30-5.29, 플랜비프로젝트스페이스)가 떠오른다. 협력기획한 임보람 큐레이터의 말을 빌리면, “고영찬에게 있어 장소란 묵묵히 사건을 목도하고, 흔적을 품어 증거를 남기는 곳이며, 그 장소를 살아간 사람들의 기억이 몇 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켜켜이 쌓여,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서사시를 읊어줄 것만 같은 대상이다.” 이미 이해했다고 판단한 사실, 그 밖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장소를 옮겨봐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전시 제목인 엑스 시추(Ex-Situ)는 이동하고 있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작가는 30m를 이동하게 된 풍차, 뉴질랜드에 있는 북한 세트장 등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여러 장소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컨대, <태양 없이> 작업은 프랑스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살시니유 금광산을 다룬 것으로,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폐광되기 이전과 이후, 픽션과 논픽션을 교차시킨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작가는 귀국 이후, 엑스 시추를 ‘변화한 자신의 작업환경’에 적용한다. 예컨대, <DODORI>는 전라북도 부안군 동중리 마을의 민속신앙을 다룬 작업이다.

장소에 깃든 배제된 서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금붕어에서 찾는다. 방생과 유기를 일삼은 장소를 모두 다 거친 뒤에서야 우리는 다양한 장소로부터 가장 깊은 생각을 캐낼 수 있다. 금붕어는 우리가 손수 꾸린 수족관의 주인공이었고, 방류된 채 호수를 가르는 탐험가였고, 20cm가 훌쩍 넘은 일그러진 금붕어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는 생존자였다. 호수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낯선 범죄자 혹은 남모르게 변기 속으로 떠내려간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금붕어가 옮겨간 거처로부터 어리석은 인간의 욕망을 탐지하듯, 장소가 우리를 긁고 지나간 후에야 우리는 깊은 아침을 맞이한다. 메마른 새벽, 검은 고요 속에서 이야기는 새롭게 깨어난다. 이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다.

인간은 금붕어를 살린 것일까. 죽인 것일까. 금붕어는 버려진 것일까. 끝내 자유를 되찾은 것일까. 자이언트 금붕어를 볼수록, 인간의 사랑은 어리석고 초라하다. 분주한 인파 속 어딘가에 있는 이야기,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계기를 고영찬 작업에서 찾는다. 사실 개인전을 짧게 언급하고 넘어간 것은 그의 작업을 볼 기회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에는 공간 ‘Floor_’에서 <천국의 스파이> 영상을, 8월에는 공간 ‘더레퍼런스’에서 <티끌 모아> 사진을, 11월에는 신한갤러리에서 기획전시 참여작을 만나볼 수 있다. 찬찬히 마주하여 금붕어를, 이야기를, 엑스 시추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 정희영(1990- ) 홍익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석사,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박사. ‘링, 동그라미를 가리키고 사각을 뜻하는’(인사미술공간, 서울, 2019), ‘Ring: a Circle and a Square’(주홍콩한국문화원, 홍콩, 2020), ‘짐승에 이르기를’(합정지구, 2021), ‘했었었었다-김용선 개인전’(오시선, 2021) 전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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