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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팬데믹 별자리: 현실에 대한 거리두기와 재사유

이문정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데카메론(Decameron)』(1351)이 그랬듯 예술은 고난으로부터의 도피와 복귀 모두를 가능하게 한다.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의 <대사들(The Ambassadors)>(1533) 속 해골을 한 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삶은 복잡한 눈속임 이미지와 같다. 그리고 예술은 놓치기 쉬운 현실을 이해하고 극복하며,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1)

코로나19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과거의 삶으로 회귀할 수 없고, 현재에 안주할 수도 없으며, 긍정적인 미래만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팬데믹>(pandemic)에 이어 엔데믹(endemic)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코로나19에 느끼는 공포감과 불안의 정도는 개인차가 있겠으나 어느 쪽이든 여전히 전염병의 영향을 받고 있고 삶이 변했으며, 바뀐 일상에 익숙해졌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는 미술, 구체적으로 전시를 비롯해 미술 현장의 프로젝트와 행사들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시의적 미술에 대한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분석, 사회문화적인 예견과 실천적 대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작가들은 재난의 시대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유의미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직설적이고 신랄한 혹은 은유적인 작품들, 치유와 회복을 전하는 다양한 작품들은 팬데믹을 겪은 인간의 실존과 사회(세계)를 고민한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렇겠지만, 전염병은 생물학적 생존과 의학,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복잡성을 갖기에 그것을 예술적으로 논의하는 일은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적지 않은 작가들이 이 난제를 대함에 있어 인간을 복잡한 집합체에 속한 행위 주체들 중 하나로 이해하고, 인간 주체로서 인간이 속한 행위 주체들의 집합체를 파악하는 탈인간적 관점 2) 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장종완, 팬데믹 별자리 5, 2021, 린넨에 유화, 146×112cm © 장종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종완의 <팬데믹 별자리> 시리즈(2020-21)는 현실과 상상의 서사를 넘나들며 세계 속 존재들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보인다. 작가는 코로나19의 숙주로 지목되었으나 이미 인간에 의해 멸종 위기에 처한 박쥐와 천산갑, 팬데믹으로 폐장된 동물원에서 죽어간 돌고래 등의 형상을 토대로 별자리를 그렸다. 별자리가 위치한 하늘은 그 자체로 현실을 초월한 무한성의 상징이다. 

신화와 종교의 공간이기도 하다. 경계 없는 하늘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인 현실을 벗어난 자유와 평안을 전달한다.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현실의 슬픔과 비극을 기록하고 우아하게 표현하기 위해 만든” 3) 가상의 별자리가 현실에 대한 거리두기와 재사유를 동시에 끌어내기 때문이다. 별 하나하나가 그물망처럼 연결된 별자리는 만물의 관계를 은유한다. 역사 속에서 인류가 자연적 조건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자연의 절대적 예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세계 속 존재들이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물은 모두 긴밀히 연결된다. 모든 사건 역시 원인과 결과라는 끝없는 관계의 연속이다.

팬데믹의 시대에 나온 하나하나의 작품들이 모여 어떤 관계성을 만들어낼지, 역사에 지금의 시대가 어떠한 변곡점으로 남을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를 우리 자신과 현실로부터 멀리 데려갈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돕는다. 4) 예술가의 창작물을 마주하며 서사적 상상력을 발휘하다 보면 언젠가 이 시대의 별자리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1) 리브카 갈첸, 「들어가는 글: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들」, 마거릿 애트우드 외 28인, 정해영(역), 『데카메론 프로젝트: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인플루엔셜, 2021, pp. 15-17.
2) 슬라보예 지젝, 강우성(역), 『팬데믹 패닉: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북하우스 퍼블리셔스, 2021, p. 142.
3) 장종완 인터뷰, 2022년 8월 8일.
4) 케이틀린 로퍼, 「서문: 우리 시대의 《데카메론》」, 마거릿 애트우드 외 28인, 2021, p. 10.


- 이문정 이화여대 조형예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연구집 『리포에틱 평론과 대화』 출간 중. 『혐오와 매혹 사이: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2018, 동녘), 『세상 모든 곳이 미술관이다』(2022, 현암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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