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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장욱진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고

김명훈

장욱진(張旭鎭, 1917-90) 화백의 작품 앞에 서면 언제나 머릿속을 맴도는 궁금증이 있다. 몇 개의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작품이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한 작은 실마리가 <선(禪)시리즈 목판화집>(장욱진기념사업모임, 1995)에 있다. 이 책은 미술사학자 김철순(金哲淳, 1931-2004) 선생이 한국의 선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구상한 목판화집으로서 선불교의 화두 21개를 주제로 그린 장욱진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좌) 장욱진, 불사선, 종이에 목판, 36×28cm, 1995
중) 장욱진, 일중일체, 종이에 목판, 36×28cm, 1995
우) 장욱진, 무제, 캔버스에 유채, 46×36cm, 1988


책의 9번째 장에 수록한 ‘불사선(不思善)’은 중국 남종선의 시조 혜능(慧能, 638-713)의 화두인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에서 유래한 말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 선과 악은 도덕적 개념이 아닌 인식적 개념으로서 대상을 바라볼 때 답을 가지지 말고 바라봐야 함을 의미한다. 소유나 집착, 지배와 같은 욕망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대상과 직면할 때 비로소 대상의 진정한 가치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장욱진은 대상의 본질을 이끌어내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며 선을 단순화시켰다. 화면에는 자의성이 사라진, 있는 그대로의 대상만이 남아있기에 장욱진의 작품은 마치 순수한 아이가 그린 것처럼 보인다.

내면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워냄을 의미한다. 그 끝에서 마주하는 있는 그대로의 대상은 상의상관(相依相關) 속에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상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내포한 다양성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장욱진의 단순한 선은 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의 결과이기 때문에 장욱진의 법명인 ‘비공(非空)’처럼 결코 단순하지 않다.

책의 16번째에 수록한‘일중일체 다중일(一中一切 多中一)’처럼 온 우주가 담겨있는 이 단순함으로 인해 선은 화면의 모든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와 무의 경계선에 위치한 요소들은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모든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크기와 비율은 전체적인 화면의 균형감과 안정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안정되고 튼튼한 구성은 시각적 편안함을 선사하고, 형식과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오로지 감각에만 의존한 감상을 가능케 한다. 장욱진의 단순함은 대상의 특징에 대한 분석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오는 생소함은 이내 익숙함으로 바뀐다. 긴장이 풀리면서 도달하는 안정감 이상의 내적 평온함은 마치 명상에 잠기듯 우리를 감각적 체험으로 이끌며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흥미롭게도 장욱진의 작품에서는 균형감과 안정감을 촉발시키는 요소로서 황금비나 대칭적인 부분들을 찾기가 힘들다. 마치 조선시대 달항아리를 보는 것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비대칭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는 미술사학자 고유섭(高裕燮, 1905-44) 선생이 조선미술의 특징으로서 언급한 “비균제성(非均齊性)”을 떠올리게 한다. 장욱진의 작품으로 빠져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어쩌면 우리의 DNA 깊숙한 곳에 담겨진 그 무엇일 수도 있다. 단순함 안에 담겨진 이러한 다양함이야말로 서구 모더니즘과 차별되는 모더니스트 장의 탈환원적 태도이자 장욱진 작품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 김명훈 (1982-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 석사, 미술경영 박사 재학, 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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