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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삶의 가장자리에서 찾은 중심

이선영

한국 사회는 과거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구감소와 1인 가구 수 증가, 직업 안정성 약화 등 개인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 중이다. 중심이자 표준으로 간주되던 삶의 패턴은 상대화됨으로써 예술의 위상 또한 달라진다. 일상적 삶에서 이미 체감되던 사실들이 통계적 지표들로 명확해진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세계 인구는 80억 명을 돌파했다는데, 한국은 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심각한 저출산 국가로 분류된다. 주민 자체가 소멸되고 있다는 지방은 물론, 서울에서도 학생 수가 모자라 폐교한다는 충격적 소식도 있다.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삶의 팍팍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통계다. 사교육비와 주택 문제가 가장 크지만, 모두 알고 있는 이 근본적 문제가 해결 안 되는 이유는 이와 관련된 기득권의 카르텔 때문일 것이다. 가까스로 취직해도 자기 전공을 살린 주요 직장의 재직기간이 사기업의 경우 평균 50세가 되지 않는다. 100세 시대라는데, 나머지 세월 동안 먹고 사는 경제적 문제도 문제지만, 그것이 겨우 해결됐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의 질문에 예술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예술은 단편화된 노동과 달리 자기 주도적인 활동으로, 지배적 사회의 규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역이자, 오랜 준비와 짧은 유통 기한을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삶의 요소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고 그곳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다.

다발 킴, ÅLVIK, NOR-WAY_Female warrior of DAMMAN
댐맨의 여전사_올빅, 2019


하지만 그저 수동적인 문화 소비자를 넘어서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개인의 소양과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자발적 또는 타발적 은퇴 이후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시작되어 가늘게나마 평생 지속돼야 한다. 예술과 만나는 사건은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에 해당할 만큼 그 시기가 중요하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활동적인 시기에 입시가 많은 가능성을 억누른다. 지나고 나면 대부분의 시험은 시험을 위한 시험으로 판명 난다. 사회 구성원들을 끝없이 잠재적 수험생으로 만드는 사회는 억압적이다. 누군가는 그 규칙을 안 지켜도 되거나 보다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아이들 숫자가 적다면 예술을 포함한 교육의 질적인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굳이 예술가가 아니어도 평생을 함께하는 자원이 형성될 것이다. 일정 경제 규모를 지탱할 수 있는 인구 부족으로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 유입되는 타자들에게 개방적일 수 있는 점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예술의 덕목이다. 자원 없고 좁은 땅, 그나마도 분단으로 섬 같은 나라에서 역사나 자연에 대한 관심사로 시공간이 확장되기보다는, 인간 대 인간의 게임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억압적 삶의 무대를 풍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근래에 더욱 강화된 자국중심주의에 세계화도 더욱 왜곡돼, 특별한 자원이나 창조적 기술 없이 수출로 가능했던 발전 또한 한계에 이르렀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이기보다는 경쟁에서 승리한 징표로서의 학벌 중심주의를 완화시킬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이 단지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실증적인 통계에 의해 맥락화 될 필요가 있다. 근래 발표된 4가지 통계를 비교하고 싶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22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에서 우리나라 문화가 ‘선진국 수준’이라는 응답이 65.9%(KBS 뉴스, 2022.12.19)를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1인당 명품 소비는 세계 최고 수준(조선일보, 2023.2.1)이다. 하지만 통계청이 제공한 한국의 ‘행복지수’는 세계 59위(연합뉴스, 2022.12.13)로 조사됐다. 호주의 국제관계 경제·평화 연구소(IEP)가 발표한 세계평화지수(GPI)에서도 한국은 ‘평화로운 나라’ 순위에서 43위(머니투데이, 2022.6.19)였다 경제와 삶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이 있는 통계들은 부의 생산과 문화적 소비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 되기 위해 장기간 준비한 후 과도하게 일하고 빠른 은퇴를 맞는 삶의 주기 속에서 과시적 소비가 문화를 대신하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더 가혹해진 현재, 무명의 영토에서 시작되고 지속되며,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예술은 진정한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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