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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공동체 속 존재로서 작가의 내적긴장 해소

심현섭

인간이 공동체 안의 존재이며 작품이 공동체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가 개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대한 긴장과 갈등 속에 존재하다는 사실이다. 이 상황 앞에서 대체로 작가의 반응은 개입과 무관심을 포함한 회피라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후자의 문제에 있어, 작가로 하여금 내적 긴장을 일으키는 사회적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게 하고 무의식으로나 의식적으로 피하게 하는 요인은 아무래도 공동체라는 전체 속에서 ‘나’라는 개인이 함몰하는 자기 상실의 굴욕적 상황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에서 공동체 속 존재를 강조하는 사상은 대체로 개체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나 권위주의로 흘러왔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나’를 잃지 않고 개인의 상처, 상실, 억압의 문제를 표현하려는 개체주의가 대세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공동체 속 존재로서 공동체에 대한 사유 자체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개인의 거처이자 토대인 공동체에 대한 사유 없이 개인의 상처와 상실, 억압의 해방은 요원하고 나아가 작가와 공동체의 분리로 인한 더 큰 상실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개인의 허무는 때때로 공동체와 맺는 거리에 비례한다. 이와 같은 상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해결의 실마리는 공동체 속 존재의 여부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공동체 속 존재로서 발생하는 긴장, 즉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단계에서 얼마나 공동체에 대해 인식하고, 그 인식과 작품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있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 국가와 개인, 작품과 작가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요구하는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사유를 방해하는 두 요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동체 속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동체와 관련하여 작업의 재료와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작가가 공동체 속 존재가 아니라고 여긴다거나 혹은 공동체 속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하는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공동체 속 존재로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지와 관련한 사회적 책임감과 같은 내적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아직 이타성과 결합하지 않은 채 이기심이 강하게 남아있는 개인주의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공동체 속 존재로서 사유는 중단되고 작가와 공동체의 거리는 시나브로 멀어진다.

그러나 작가가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중단하는 요인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개인의 상처와 상실의 해결, 공동체 속 존재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공동체의 완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빛의 가능성을 암시하듯 공동체 불가능성의 가장자리는 곧 가능성의 어귀다. 더욱이 작가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는데 멈추지 않고, 보이는 너머의 이상을 추상화함으로써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공동체 불가능성이 공동체에 대한 이상을 포기하는 근거일 수는 없다. 작가는 현실을 ‘다르게’ 보거나 감춰진 것을 ‘드러냄’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모더니즘이 소위 포스트모더니즘화하면서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러한 공동체에 대한 열망, 즉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작가의 공동체 사유와 열망이 작품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는가는 관점과 선택의 문제다. 공동체에 드러난 현상을 정신분석과 같은 심리적 문제로 개인화하여 표출할 수도 있고, 개인을 둘러싼 사회·물질적 구조의 문제를 드러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중요한 것은 전체와 개인, 개인과 개인, 작가와 작품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다.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내적 긴장에 굴복하는 대신 공동체의 역사 속에 개인의 역사를 기입하는 일, 달리 말하면 공동체 속 작가로서 소재와 재료의 선택, 말과 글의 운용이 공동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한 시점이다.



- 심현섭(1963- )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수료. 화천지역사회연구소, (주)민들레지역디자인 대표 역임. 현 열린미술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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