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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개인의 정서로 공명하기=‘ㄷ떨’‘記’ : 미술저널 『ㄷ떨』의 창간 이야기

김도희

시작 페이지 양면, 예술계 인사의 파닥거리는 손글씨 축사를 빼곡히 채운 미술저널 『ㄷ떨』이 2023년 창간됐다. ‘작가가 잡지를?’ 느닷없는 소식일지 모르나 한국현대미술사에 대한 관심에서 오래된 미술 저널을 수집, 읽어오며 새로운 잡지를 상상한 지 꽤 되었다. 그러던 중 오픈블랭크가 기획한 <화랑강독>(1970년대 저널을 읽으며 공부하는 모임)과 동시에 『ㄷ떨』의 창간준비가 본격 진행되었다.

『ㄷ떨』은 1970년대 미술 저널에서 영감을 받았다. 흑백 도판에 한자혼용 세로쓰기, 미술 언어가 복잡해지기 전이었거니와 대중에게 낯선 ‘미술’을 전달하기 위해 친근한 소재를 일상어로 썼다. 대부분이 구체적인 사건, 만남, 삶의 경험에 근거한 개인의 정서, 개념어로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언어로 채워져 있었다. 첫 아이를 낳고 먹은 국밥의 시원함을 빌어 개인전 소감을 전한 천경자의 글, 견제와 애정이 묘하게 섞인 상대의 초상화와 함께 서로를 소개한 김구림·정창섭의 글 등은 어떤 미학적 용어 없이도 예술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그들의 ‘몸틀’을 드러내며, 반세기 후의 현재를 사는 내 삶의 감각에 닿았다. 글이 귀하던 원고지 시대, 부박할지언정 한 글자, 한 단어가 담은 진실의 무게도 지금과는 달랐다. 이에 비해 현재의 대부분 글쓰기는 “남의 혓바닥으로 자기가 먹은 음식을 설명하는 꼴”에 가깝다. 서구 주류 담론의 키워드로 짜깁기 된 작가론은 영악한 작가의 새삼스럽지 않은 생존술인 반면, 각자의 정서를 통과한 세계관의 차이는 식별하기 어렵다. 수십 년이 지나면서 제도가 인정한 표준으로서의 형식과 권위를 섬기느라 한 작가를 총체적 감각으로 만나고 그 세계를 구분하고 노니는 문화는 얻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읽은 과거의 저널엔 창백한 현실과 대조적인 체온과 함께 일종의 순리를 깨닫게 했다. 『ㄷ떨』은 예술이 각자 삶의 체험에서 공명하며 남겨온 흔적이자 정수이며, 저마다의 삶의 토대에서 소통되고 변화한다는 순리에 충실하고 동시에 그 순리로 현실에 저항하고 자 과거의 방법론을 빌어오며 출발했다.



『ㄷ떨』 창간호


『ㄷ떨』은 1970년대 저널의 쉽고 직관적인 목차와 세로쓰기, 작은 판본을 적용했다. 창간호는 ‘시대싸롱’, ‘작가 노우트’, ‘푸로필’, ‘내가 좋아하는 소재’, ‘내가 사랑하는 작품’, ‘나의 연구 노우트’, ‘꽁트’ 등의 차례로 각 필자의 체험을 뿌리로 한다. 무분별한 개념어는 자제하되 서툴더라도 자기 생각이 담긴 간결한 문장을 지향한다. 손에 착 감기는 작은 크기와 세로쓰기는 글이 늘어지는 것을 막는 방편이다. 만남에는 서사의 그릇이라 할 구체적 장소성이 드러나고, 연구자는 글로 배운 내용이 아닌 직접 뛰고 누비고 만나며 알고 느낀 그만이 전할 수 있는 내용을 전한다. ‘작가 노우트’, ‘내가 좋아하는 소재’의 단 한 구절도 ‘남의 말’에 숨지 않았다. 감상을 과장하지 않은 담담한 글임에도 각자의 인간적 특이성, 정취가 녹아 있어 작품과 자연히 연결되니 현실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 역시 예술에 대한 믿음이 강림하게 된 인연에서 책임과 실천의 영역으로까지 사랑이 확장된 애호가의 이야기를 전한다. ‘꽁트’란을 두어 알싸한 해학과 현실풍자도 빼먹지 않았다. 80대부터 20대까지, 사진가, 화가, 조각가, 서예가 등의 미술 이야기가 고루 섞여 있고, 다양한 애호가와 비주류 연구자의 용감한 ‘ㄷ떨(썰)’도 고루 실을 예정. 『ㄷ떨』은 주류 담론과 개념어 사이로 미끄러져 온 ‘ㄷ떨’1) 들의 질박한 서사와 함께 살며 진솔한 고민과 공명하는 신호수, 떨판이 되려 한다. ‘떨’은 ‘풀’의 강원도 방언이기도 한데 삼중디귿의 저널명 ‘ㄷ떨’은 풍부한 다발(떨기)을 형성하는 개별자들의 유연한 생명력과 동세를 새로운 한글로 상형한 것이다.

감사하게도 창간호가 완판에 가깝다. 그리고 십시일반 귀한 후원을 해주신 독자분들 덕에 이번 가을 『ㄷ떨』 2호가 나올 예정이다. 개인적 바람은 한 계절씩 거슬러 다음 호를 내놓는 것. 친구든 애인이든 사계절을 다 겪어봐야 하지 않겠나. 2호는 원로 조각가의 제작과정이 담긴 사운드와 만화 작업노트 등 새로운 시도가 담긴다. 겨우 1호를 내놓은 『ㄷ떨』이라 대책보다 포부가 가득하다. 가장 큰 바람은 읽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즐거움을 잃지 않으며 함께 키우고 커가는 잡지 되기. 그렇게 이 시대 미술의 정서를 미래에 닿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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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이라는 뜻의 몽골어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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