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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다시 읽고 연결하기: 미술의 말과 텍스트

김진주

연말이 그렇듯, 미술 현장에서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말들이 모인다. 운좋게 2023년 연말, 미술에서 말, 그리고 그 말들이 이어지고 변모하는 형태와 움직임인 텍스트 생산과 발화의 실천을 돌아보는 두 자리가 있었다.



『현실동인 제1선언』 표지 ⓒ 김윤수 유족 소장


2023년 12월 2일 인사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 ‘김윤수 선생 5주기 학예한마당’에는 2018년에 작고하신 김윤수 선생을 기리는 작가들의 작품과 추모작 전시, 유족 소장 연구 자료를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자료전》과 『현실동인 제1선언』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읽어내는 학술행사가 함께 마련되었다. 당시 미술계 상황과 선언문의 문맥을 미술사적·역사적 성찰의 차원에서 심층적으로 짚어낸 발표(신정훈 서울대 교수)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했다. 아직도 해석될 만한 여지가 많고 지금과 다른 문체로 쓰인 『현실동인 선언』에 대한 중층적 분석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다시 읽기는 미술 텍스트 연구에서 절실한 과제이고 연구자 개인으로서도 즐길만한 거리이다. 최초의 읽기, 텍스트 생산자의 소멸 이후 다시 읽기, 그 다시 읽기의 읽기. 여러 중첩된 읽기의 수행은 말과 텍스트를 역사적 인물이라는 테두리에 가두지 않고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한다. 김윤수 선생의 ‘작가론과 현장 비평을 중시한 실천’은 여전히 유효한 방법론이고, 유파나 이즘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단언은 현실미학의 갱신 방향을 열어주며, 현대예술의 본연 가치인 전위의 핵심을 저항성으로 본 데서는 근원적 불복종이라는 미래 예술이 가져야 할 정향의 원점을 예견한 것이 아닐까, 선언 다음 해 선생께서 쓴 글에서 “아리아드네의 실마리”같은 표현을 재발견하며 현실주의 예술이 주장했던 인류에 대한 연대 의식을 확인하고 이것이 생명, 더 나아가 비인간을 향한 예술의 다가서기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은가,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 유족 제공으로 『현실동인 제1선언』의 여러 판본을 접했는데, 이는 다른 세계의 아방가르드 예술 선언에 비교하여 늘 아쉬웠던 『현실동인 선언』의 생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의 부재와 이후의 텍스트와 발화로 파생되길 꿈꾸는 실현되지 않은 기대를 달래주었다. 이것이 이 말의 자리가 찾고자 했던 현재성에 다가서는 움직임이 되지 않을까.

미술 텍스트에서 편집자의 수행성을 곱씹으며 12월 16일 서울시립미술관에 마련된 ‘2023년 한국 현대미술비평 집담회’에 참석했다. 2부는 기획편집자로 함께 했던 온라인 플랫폼 세마 코랄(semacoral.org)의 말과 글을 만드는 씨앗과 동료를 가늠·전망해 보는 자리였다. 세마 코랄은 미술 안팎의 지식 텍스트를 만나게 하는 키워드로 작동하는데, 이 연결어 중 ‘작가지식생산’이 공통 화두였다. 이는 이론과 담론의 생산 주체인 비평가뿐 아니라 작가도 말과 텍스트로 나타나는 지식의 원천이라는 관점에서 작가노트보다 밀도 높고 진일보한 사고와 실천적 지식을 담고자 작가를 텍스트의 생산자로 중시하는 것이다. 미술에서 말과 텍스트를 만드는 모두를 아우르는 ‘연구자’라는 관점에서 글이라는 언어 생성과 형태화 제안이 연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획편집자로서 텍스트 생산자의 이전 연구에서 그가 지속해서 연구하고 싶은 방향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발견하고자 했고 이것이 미술관의 지식 추구 방향이나 미술계에 필요한 아이디어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그 줄기가 세마 코랄이라는 언어의 세계를 정거장처럼 지나 얻어가길 바랐다.

소셜 미디어적 글쓰기가 늘어가고 제도가 텍스트의 성격을 주조하는 이 현실에서, 이러한 변화는 문체나 주제에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세대 이동을 고려하면 미술의 문체·발화·이 모든 언어적 특질과 지향성의 변화를 기민하게 포착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술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각의 변화를 미술의 언어는 잘 감지하고 반응하고 생산하고 있을까? 해마다 찾아올 미술에서의 말과 텍스트의 자리가 그 일을 잘 풀어내길 바란다.



- 김진주(1981- ) ‘팟캐스트: 말하는 미술’ 메인 진행자(2015-2016),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 일원으로 페미니즘·퀴어 감각의 웹진 『세미나』(zineseminar.com, 2019-2021) 공동 기획·편집 참여. 2021 서울시립미술관 온라인 지식 플랫폼 《모두의 연구실 ‘코랄’》 외부기획자로 함께 창간 후 학예연구사(2021.10-2023.10)로 편집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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