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09)탈식민주의의 비엔날레와 공예성

김한별


가브리엘 체일(Gabriel CHAILE) ⓒ 촬영: 김한별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베네치아비엔날레를 기대하며, 지난 2022년 방문했던 비엔날레의 사진첩을 찬찬히 뒤적여보다 문득 주제전에서 눈에 들어오던 작품들을 꺼내 보았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부족 토기를 커다랗게 설치한 가브리엘 체일(Gabriel Chaile)의 작품과 장소와 역사적 맥락을 다시 들춰 내보는 루스 아사와(Ruth Asawa)와 여러 작가들의 협업 작품인 <타임캡슐Ⅳ(Time capsule Ⅳ)> 등 여러 공예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같은 기간 방문한 카셀도큐멘타에서도 Britto Arts Trusts의 <Rasad>는 로컬이 가지고 있는 지역과 사회정치적인 격변, 공동체의 모습을 공예로 치환하여 설치한 작품이었고, 지난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이이란(I-Lann Yee) 작가의 <생선 절임용 흰 매트(Salted Fish White Mat)> 등은 지역성을 배경으로 한 참여적 내러티브를 확장한 공예 형태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예적 성격을 띤 작품이 근래 여러 비엔날레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느끼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사실 비엔날레의 붐이라고 불릴 수 있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의 약 35년의 기간 동안 세계 약200여 개의 비엔날레가 급속도로 생겨났고, 전 세계적으로 예술에 대한 서구적 헤게모니를 유지해 왔다. 이 시간 동안 비엔날레는 항상 국가, 지역, 초국가적 연결 등을 포용하는 기치를 내세웠지만, 실제 대부분의 서구 중심 행사들은 식민지 및 산업화의 역사적 맥락을 지속해 왔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개되는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 미술 행사의 주요 담론들은 기존의 지배적 헤게모니의 서구 미학에 대한 반대 급부적 내용이나 탈식민지적 사관, 로컬리티와 선주민, 여성과 젠더, 기후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기존 예술 제도를 탈식민화하려는 큐레이팅적 접근으로 해방적 실천을 위한 하나의 반(反) 헤게모니적 발현의 연속된 투쟁의 암시라 할 수 있는데, 그 하나의 방식으로 공예 작품들이 속속들이 전시장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실 공예가 왜 탈식민주의의 해방적 의미를 담고 어떻게 관람객을 맞이하는가에 대해서는 공예의 개념에 대해 먼저 논해야 한다. 근대의 공예 개념은 순수예술(Fine art) 개념이 성립되는 18-19c 민주주의 국가 형성과 산업화 속에서 태어났다. 칸트(I. Kant, 1724-1804, 『판단력 비판(1790)』)와 헤겔(G. W. F. Hegel, 1770-1831, 『예술철학(1823)』)은 공예를 예술과 분리했고, 이 개념들은 시간이 지나며 인간 스스로의 주체성과 존엄성의 기반이 되는 ‘예술’ 개념과 대비되는 하위 혹은 서브 개념으로 나타난 서유럽 근대기의 산물로 여겨졌다. 이 안에서 공예는 타자화, 주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근현대를 지나오며 덜 선진화된 혹은 반(反)근대적 사관의 부산물로서 여겨져 왔다. 이러한 공예 개념의 탄생은 그 시작점부터 근대성이라는 시대정신과는 다른 노선을 취했기 때문에, 공예의 의미나 맥락, 활용성, 일상성, 장인성, 수공성, 노동성, 재료 등 공예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뿌리째 흔들려왔다. 예술과 공예의 구별은 서양 미학에서 중요한 갈림길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공예의 구별은 식민과정을 뒷받침하는 문화의 계층적 평가를 뒷받침해 왔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글랜 아담슨(Glenn Adamson)과 줄리아 윌슨(Julia B.Willson), 마리 로(Marie Lo)와 같은 학자들은 공예가 사회적 평등과 교육 및 계급에 관련된 논쟁과 오랜 시간 동안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공예의 사회성과 일상성, 지역성에 관해 새로운 논의를 펼치고 있다. 공예는 활용성(usability)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지면서, 그 사용 과정에서 문화적 의미와 가치가 내재화되고 공유된다. 이러한 일상적 부분(everyday-ness)이 가지는 문화적 가치는 서구 중심의 미학적 가치와는 다른 독자적인 체계를 형성하며 공예를 통해 일상에서 경험하는 문화적 실천과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전승하는 데 기여하는 특징을 가진다. 또한, 공예란 것은 그 지역의 환경, 역사, 사회적 관계,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기 때문에, 그 지역이 가진 독특한 스타일과 의미인 지역성(locality)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공예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회학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단순한 수공예나 장식적인 요소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문화, 역사, 정체성을 반영하고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공예의 성립 요건들이 단지 이전의 기계적 예술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물질 양식과 시대정신의 변화 그리고 공동체 구성과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전 지구화 현상 등을 내포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때문에, 공예는 이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편적 틀에서 이해하려는 과정에 접어들었다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근래에 많이 보이는 비엔날레의 공예적 접근은 국제 전시 행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현대예술의 문화적 가치와 방향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큐레이팅의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서구권 비엔날레 외에 남미의 아바나(Bienal de la Habana)나 아프리카의 다카르(Biennale de Dakar) 비엔날레 등 역사적인 행사들에서는 공예적 접근을 통한 ‘예술’과 ‘민족’ 사이의 탈식민 사상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 왔으나, 이는 서구 중심의 비엔날레 판도에서 벗어난 변방의 이야기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기존 서구주의를 대표했던 비엔날레에 이러한 공예적 논의가 등장한다는 것으로, 공예가 소수민족과 로컬리티, 여성과 젠더 등 탈식민주의적 개념을 대변하고 이를 보편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수단으로 ‘중앙과 변방’, ‘주류와 비주류’의 모순점에 위치하여 큐레이팅 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비엔날레의 공예성은 1960년대 이후 탈식민 사회로 전환에 대한 항변과, 자본의 논리로 새롭게 아프리카나 남미 등 비서구권 국가에 나타나는 제국주의적 제2의 식민지화에 대한 현대미술계의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담론 생산의 중심이 중앙에서 변방으로 옮겨지는 상황에서 그리고 디지털로 말미암은 비물질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공예는 우리에게 가장 명료하게 다가오는 집단적 공동체의 물질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공예의 탄생이 비록 반(反)근대적으로 여겨지거나 서구 중심의 현대미술계에 비해 소외된 지역의 문화 생산을 대변했다 하더라도, 현재의 공예는 비엔날레라는 장에서 기존 담론과 대척점에 서서 새로운 담론을 생성해 내고 있다. 이는 하나의 정이 반을 만나 합이 되는 정반합의 논리로서, 반복되고 뻔해진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판을 만들어 나가는 변증법적 과정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 김한별(1987- ) 홍익대 문화예술경영 박사과정. 제7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수석큐레이터(APAP7), 2021 강원국제트리엔날레 큐레이터, 2019-2021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총괄, 2018 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큐레이터 등 역임. 아프리카 예술 및 문화정책 분야 연구.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