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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류이치 사카모토를 추모하며

노유니아

작년 3월 서거한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 1952-2023)를 헌정하는 첫 전시 《사카모토 류이치 트리뷰트: 음악/예술/미디어》(2023.12.16-3.10)가 도쿄 신주쿠의 NTT 인터커뮤니케이션센터(ICC)에서 열려, 도쿄 방문차 참배하는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현대음악과 설치,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전시는 다소 난해했고 추모전인 만큼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였는데, 평일 낮임에도 관객이 꽤 많아서 인상적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부랴부랴 그의 마지막 온라인 콘서트를 영화화한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OPUS>를 봤다. 화면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가 이제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영화를 보는 내내 서글픈 마음이었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Tong Poo>를 천천히 연주하는 앙상한 손가락을 비출 때에는 빠른 템포로 재기 발랄하게 연주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가슴이 저릿했다. 이윽고 마지막 장면, 그가 무대에서 떠나고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문장이 화면에 비치자 객석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식이 터졌다.



전시 전경 ⓒ 촬영: 노유니아


사카모토는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이 유명하다 못해 진부한 문구를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비틀어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라고 말한 백남준 역시 사카모토가 평생 경의를 품었던 대상이었다. 사카모토는 솔로로 데뷔했지만 YMO 그룹 활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YMO가 해산한 1984년,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이 일본을 방문했다. 10대 시절부터 현대미술 잡지를 탐독하며 그들을 동경했다는 사카모토는 백남준의 퍼포먼스에 참여했고 백남준에 대한 헌정곡 <A Tribute to N.J.P.>(1984)를 발표했다. 그리고 뉴욕으로 건너가 백남준과 스무 살의 나이차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으며 <올스타 비디오>(1984), <바이바이 키플링>(1986), <Wrap around the World>(1988) 등 여러 작업에 함께 했다. 요즘 말로 ‘성덕’이 된 것이다.

사카모토는 이우환도 경애했다. ICC의 트리뷰트 전시에는 이우환의 작품 두 점이 걸려 있었다. 사카모토가 병실 침대 맞은편에 걸어놓았다는 그 그림이다. 그는 이우환에게 음반에 쓰기 위한 아트워크를 직접 부탁했고, 이우환은 그의 신곡을 듣고 느꼈던 감정을 추상적인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12>의 앨범자켓


“바람 소리, 우주적인 소리의 다발이 내려오는 느낌을 받고 여러 색 선을 겹쳐 그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사카모토의 마지막 정규앨범인 <12>의 앨범 재킷이 되었다. 일찍이 사카모토가 모노하에 대해 관심을 표했고 이우환의 작품도 여러 차례 언급했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친분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의외로 둘의 교류는 최근에 시작됐다. 2017년, 도쿄의 와타리움에서 열렸던 《사카모토 류이치: 설치 음악》전에 관람객이 포스트잇에 감상을 적어 붙이는 코너가 있었는데, 이우환이 전시를 보고 “정말 재미있게 봤다”는 메모를 남긴 것을 계기로 사카모토가 직접 연락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사카모토는 이우환의 전시《Inhabiting Time》(메츠 퐁피두센터, 2019)을 위한 음악을 만들기도 하며 직접적인 관계를 이어나갔다.

올 12월,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회고전이 열린다. 음악가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워낙 강했던 그이기에, 미술계에서의 관심은 등한했던 감이 있다. 일본에서도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라고 하니, 사후 역사적 평가가 시작되는 셈이다. 국공립미술관에서 미술가로서의 그를 어떻게 조명할지 궁금하다. 또한 동시대를 살며 교감했던 한국 출신 작가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다뤄질 것인지도 기대 요소 중 하나다. 그의 인생은 비교적 짧았지만, 그의 예술은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



- 노유니아(1982- ) 근현대 한국과 일본의 시각/물질문화 연구자. 『일본으로 떠나는 서양미술기행』(미래의 창, 2015), East Asian Art History in a Transnational Context(공저; Routledge, 2019) 등 저술. 『일본 근대 디자인사』(소명출판, 2020), 『일본 현대 디자인사』(소명출판, 2023) 번역. 명지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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